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배연국칼럼] ‘진짜 조국’은 어디 있는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론분열 부른 ‘가짜 조국’ / 어제 법무장관 직에서 물러나 / 나라다운 나라 다시 세우려면 / 대통령이 독선에서 벗어나야

너무 멀리 왔다. 조국이 법무장관에 지명된 두 달여 동안 이 땅에는 두 개의 조국이 존재했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광화문 집회의 조국(祖國)이고, 다른 하나는 조 장관을 지키는 서초동 집회의 조국(曺國)이었다. 전자가 양심과 정의와 공정의 외침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적 성격이었다.

그간 국론분열의 불씨로 작용했던 조국은 어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퇴임의 변을 통해 “나는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개혁을 들먹였지만 개혁은 그가 입에 담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개혁의 개(改)는 ‘자기(己)를 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뽑고 무두질로 잘 다듬은 가죽’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개혁이란 자신을 때리고 껍질을 벗겨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남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기를 고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특권과 반칙으로 얼룩진 조국이 개혁의 적임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


국민이 진짜 바라는 것은 ‘가짜 조국’의 퇴장이 아니다. ‘진짜 조국’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그 답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나와 있다. 당시 국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7가지로 추리면 이렇다. 첫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둘째,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나의 국민이고, 오늘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셋째, 제왕적 권력을 나누어 낮은 권력자가 되겠다. 넷째,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다섯째, 나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겠다. 여섯째,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짓말하지 않고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겠다.

대통령이 다짐한 약속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언행은 진실보다는 거짓에 가까웠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탕평 인사는 코드 인사로 대체된 지 오래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천명했지만 스스로 ‘반쪽 대통령’의 길을 걸었다. 정의를 소리치는 국민의 외침에 귀를 막고 범법자 가족을 지키자는 불의의 소리에만 귀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성공한 대통령은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자기 몸가짐부터 먼저 본다.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기 때문이다.

성공한 리더에게 절실한 덕목은 솔선수범이다. 공자가 치국에 앞서 수신을 강조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자는 지도자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라를 다스린 사람은 아마도 순임금이다. 무엇을 하였는가? 자기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남쪽을 향해 똑바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남면(南面)이다. 남면은 옛날 조정에서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는 것을 말하지만 임금의 도리를 지칭한다. 임금이 임금다우면 신하가 신하답게 되고, 결국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다고 외쳤다. 그 질문을 바깥으로 던지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과연 대통령다운지 말이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이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답을 구한다면 지금 국민의 입에서 “이게 나라냐”는 함성이 터져 나오는 연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면 무엇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철학자 니체는 “확신이 거짓말보다 훨씬 위험한 진실의 적”이라고 했다. 확신에 빠져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면 소통과 진실의 문이 닫힐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가장 큰 적은 나만을 고집하는 나 자신이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대통령이 확답을 피했지만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의 최대 적은 나만 옳다는 독선이다. 독선을 버려야 일방통행 국정과 불통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짜 조국을 나라답게 세우는 길은 거기서 시작된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