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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검찰개혁 시동 걸고 하차한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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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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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사임했다. 임명 35일 만이다. 이로써 장관 후보자 지명 뒤 정국을 2개월 넘게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조국 사태’는 일단락됐다. 검찰개혁 세부 시행안 발표 직후 ‘자진 사퇴’ 카드를 던짐으로써 ‘떠밀리듯 나가지 않았다’는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하지만 사퇴의 핵심 이유는 ‘민심’이었다. 최근 여러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여야의 지지율 격차도 빠르게 좁혀져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 장관의 사퇴는 여론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정부와 청와대가 내놓는 정책들이 ‘조국 블랙홀’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다시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도 있다.

■ 조 장관 “제 역할은 여기까지”

조 장관이 사의를 밝힌 시각은 오후 2시였다. 오전 11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특수부 축소 및 명칭 변경을 비롯한 검찰개혁 방안을 브리핑한 지 2시간여 만에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그는 “검찰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서 또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난 2년 반 전력질주해왔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유 불문하고 국민들께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밝혔다. 이어 “장관으로서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검찰개혁을 위해 마지막 저의 소임은 다하고 사라지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감당했다. 그러나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퇴 시기는 조 장관 스스로 결정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고민정 대변인은 “전날 고위당정협의회가 끝난 뒤 사의를 전달해 왔다. 조 장관의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본인이 밝힐 때까지 당에선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 급속한 여론 악화가 결정적

조 장관이 사퇴를 결심한 대외적 이유는 ‘법무부 장관이 할 수 있는 검찰개혁은 일단락 지었다’는 것이다. ‘서초동 촛불집회’가 마무리됐고, 이제는 검찰개혁을 위한 입법이 중요한 시점이라 본인이 비켜줘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한 여권 핵심 인사는 “대통령과 당에 검찰개혁 방안을 보고했고, 오늘은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걸림돌인 내가 빠질 테니 법안을 꼭 통과시켜달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조 장관 사퇴의 결정적 이유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여론이었다. 여권 전체로 보면 두달 넘게 이어진 ‘조국 정국’을 이제 마무리하고 국정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 결과는 여권에 묵직한 충격을 안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1.4%로 지난주보다 3.0%포인트 하락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도는 오차범위 내인 0.9%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일간 조사치로는 지난 11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역전(민주당 33%, 한국당 34.7%)되기도 했다.

총선을 6개월 앞둔 민주당 의원들의 위기감도 날로 증폭되는 상황이었다. 총선에서 패하면 정권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판단한 청와대의 곤혹스러움도 상당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길에 나가 보면 민심이 변했다는 게 체감된다. 대구는 물론이고 부산도 전멸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라고 말했다.

■ ‘검찰 수사에 떠밀리듯 나가지 않는’ 시기 선택

조 장관 사퇴 소식이 전해진 뒤 여권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짙었다. 조 장관은 사퇴 결심을 굳히고 2주 전부터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사퇴 시점을 상의했다고 한다. 한 여권 인사는 “조 장관에게 주어진 날짜가 셋이었는데 그중 하나인 14일을 조 장관이 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조 장관의 선택에는 ‘검찰 수사에 떠밀리듯 나가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지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부인 정경심 교수의 구속영장 청구 직후나 발부 직후 사퇴할 경우 검찰 때문에 쫓겨나는 모양새를 피할 수 없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다면 22일 전후가 유력했다. 15일 법무부 국정감사,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21일 종합감사 일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여론이 더 나빠질 수 있어 조 장관으로선 법무부 국감 하루 전인 14일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권이 13일 고위당정협의회, 14일 조 장관의 검찰개혁 방안 직접 발표 등의 일정을 서둘러 잡은 것도 이런 사퇴 일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주 민주당 법제사법위원들이 ‘15일 법무부 국감 전에 조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쪽으로 뜻을 모았고, 이 사실을 조국 장관이 알게 됐다. 14일 사퇴 결심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조국 사태’ 수습 어떻게

조 장관의 사퇴로 일단 ‘조국 리스크’에서 벗어난 정부·여당엔 ‘상황 수습’이라는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검찰개혁의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은 물론, 조국 사태가 불을 지핀 입시 공정성 문제 등 교육제도 전반의 문제도 손을 봐야 한다. 청년들의 상실감을 치유할 대책도 필요하다. 조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며 훼손된 인사검증 기준과 검증 시스템도 정비가 불가피하다. 조 장관 사퇴로 인한 후속 인사가 첫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국토교통부나 교육부 등 교체 시기가 된 부처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함께 바꿔 국정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문 대통령이 ‘조국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런 정책적 성과와 후속 인사 등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반전의 계기를 맞은 여당이 정기국회에서 개혁입법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향후 정국 주도권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정부와 여당이) 당장 중도층 마음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 진영논리를 극단화시킨 것에 대한 여권 내부의 진솔한 반성 없이 다시 공격 일변도로 나간다면 지지율 회복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조 장관 임명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밀어붙인 인사들의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다. 그래야 실망한 국민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철 서영지 장나래 이지혜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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