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는 정치적으로 변화의 촉발점에 쓰인다. YH사건→김영삼 의원직 박탈→부마항쟁→10·26으로 이어진 유신 말기 사건은 연쇄적으로, 1990년 지방자치제를 연 김대중 전 대통령 단식에도 이 제목이 뽑혔다.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2000년의 동교동 권노갑, 2012년의 친박 허태열, 올해 이해찬·양정철은 물갈이의 십자가를 자임했다. 4차례나 험지에서 지역 벽에 도전한 ‘바보 노무현’도 불쏘시개로 불렸다. 꼭 의도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3년 9월4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일어난 ‘이미경 의원 머리채’ 사건은 그날만 의원 31명이 탈당계를 낸 분당의 불쏘시개가 됐다. 두번 구속된 안희정은 2002년엔 정치자금 투명화, 올핸 미투(MeToo)의 불길을 댕겼다. 트럼프·김정은이 주고받은 친서가 비핵화 협상을 촉발시킬 때도, 담뱃세·금리·온실가스·동남권신공항이 세상 이슈가 될 때도 곧잘 따라붙는 말이 불쏘시개다.
조국 법무장관이 14일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물러났다. 66일간 대한민국 뉴스 중심에 섰던 사람의 사퇴 변에 불쏘시개가 소환된 것이다. 조 장관은 지난 1일 출석한 국회에서도 “제게 주어진 시간까지 제 일을 하고자 한다. 불쏘시개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다. 그 분기점을 정부 몫 검찰개혁안이 발표된 날로 잡은 셈이다. 불쏘시개는 야당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읍참마속’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더 큰 태풍을 예고하는 말일 수도 있다. 조국이 불쏘시개가 된 촛불은 검찰개혁과 공정사회였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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