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4 (화)

"영화 속 여성, 자동차보다 가구와 함께 등장"…국내 연구진, 남녀 캐릭터 분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병주 교수


미국과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남성보다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정량적으로 확인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병구 교수팀은 2017년과 지난해 개봉한 미국 할리우드와 우리나라 영화 총 40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다음 달 11일 열리는 ‘컴퓨터 기반 협업 및 소셜 컴퓨팅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연구팀은 남녀 캐릭터의 성별 묘사를 분석하기 위해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8가지 지표를 개발했다. 감정적 다양성, 공간적 역동성, 공간적 점유도, 시간적 점유도, 평균 연령, 지적 이미지, 외양 강조도,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목적의 지표가 있긴 했지만, 남성 캐릭터는 따로 분석하지 않아 여성 캐릭터와 얼마나 성별 역할에서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또 분석 대상이 여성 캐릭터의 대사에 한정돼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시각적인 상황은 고려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한국 연구진은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해 캐릭터의 성별과 감정, 나이 등을 추출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물의 종류와 위치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편향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감정적 다양성’ 지표에서 여성 캐릭터는 슬픔, 공포, 놀람 같은 수동적인 감정이 많았지만, 남성은 분노와 싫음 같은 능동적인 감정을 더 많이 표현했다. 남성이 영화 속에서 거칠게 싸움을 벌인다면, 여성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거나 두려움에 떠는 식의 장면이 많았던 셈이다.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 지표에선 여성 캐릭터가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이 남성 캐릭터에 비해 55.7%에 그쳤지만,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123.9%에 달했다. 미국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처럼 여주인공이 자동차 레이싱을 벌이는 일은 드물다는 얘기다.

또 여성 캐릭터의 ‘시간적 점유도’를 분석했더니 남성 대비 56%였고, ‘평균 연령’에서 여성의 나이는 남성의 79.1%에 머물렀다. 특히 이 경향은 미국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더 강했다. 한국 영화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출연 분량이 적고 어린 경우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흥행 성적 등을 기준으로 한국 영화에서는 <안시성> <협상> <곤지암> 등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맘마미아2> <메이즈 러너:데스큐어> <쥬라기 월드:폴른 킹덤> 등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영화 속 남녀 캐릭터 묘사가 대중의 잠재 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제작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