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목멱칼럼]재정투입해 성장둔화에 대비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통계청에서 2017년 9월이 지난 경기 정점이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13년 3월에 시작해 2017년 9월까지 54개월간 이어진 11번째 경기 순환이 마무리됐다. 순환기간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길지만 정점의 높이는 반대로 가장 낮았다.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기 성장-낮은 성장률’이란 패턴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난 것이다.

이데일리

2017년 9월이 경기 정점이니까 현재까지 우리 경제는 2년째 위축 상태에 있는 셈이 된다. 1972년 이후 10번의 순환 때 경기가 좋아지면 평균 34개월간 확장이, 반대로 나빠지면 19개월간 수축이 나타났었다. 외환위기 이후 주기가 조금 짧아져 26개월과 18개월로 줄었다. 이 통계로 본다면 지금 우리 경제는 저점을 통과했거나 저점에 근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수축 기간이 과거 평균을 넘었기 때문이다.

저점이 멀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괜찮은 경제지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체감지표 개선이 두드러진다. 9월 소비자심리지수가 96.9로 6 월 이후 3 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 역시 8월 71보다 개선된 73을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매판매와 설비투자도 전월보다 3.9%, 1.9% 늘었다. 생산이 0.5% 증가에 그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소비·투자·생산 세 지표 모두가 상승한 것이다.

문제는 선진국이다. 유럽은 이미 1년 전부터 경제가 좋지 않아 우리 경제에 추가로 악영향을 미칠 부분이 없지만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선진국, 신흥국 가리지 않고 미국 경제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9월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47.8까지 떨어져 경기 둔화 기준점 밑으로 내려갔다. 2009년 6월 이후 최저치로 작년 8월 이후 둔화 추세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의 제조업이 이렇게 약해진 건 미·중 무역분쟁 때문이다. 분쟁 과정에 관세가 올라가면서 기업 생산이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제조업 경기 둔화는 시간이 지나면 서비스업으로 넘어온다. 과거 예를 보면 제조업 경기가 둔화하고 9개월 정도 지나면 서비스업도 약해졌으므로 조만간 서비스업 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연준이 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리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경기 둔화 압력이 강해 금리를 내려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과 2007년이 그런 경우였다. 2000년에는 6.5%였던 기준금리를 2년에 걸쳐 1.0%까지, 2007년에는 5.25%였던 기준금리를 2년 만에 0.25%까지 내렸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인하 기간에 주가가 하락했고 경기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금리를 내린 폭이 작거나 인하 속도가 느려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당시 금리 인하는 다른 어떤 때보다 빠르고 강하게 진행됐었다. 2000년의 경우 첫 번째 인하 폭이 1%포인트였고 2007년은 0.5%포인트였다. 지금 연준이 금리를 내린다고 해봐야 그 폭이 0.25%포인트에 지나지 않고 한번 인하하고 뜸을 들인 후 두 번째 인하를 하는 것과 비교된다. 2000년 금리 인하는 IT버블이 터진 직후였고 2007년은 금융위기를 앞둔 시기여서 경기 둔화가 금리 인하 효과를 압도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선진국 경제가 좋지 않으면 국내 경기가 저점을 넘은 후에도 힘차게 오를 수 없다. 기껏해야 소폭 오르거나 밑바닥에서 깔리는 L자형이 될 수밖에 없다. 성장 둔화에 대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효과가 바닥을 드러낸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에 집착할 게 아니라 정부의 재정을 적극 투입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서 국가 부채 증가를 걱정하지만 아직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재정 건전성은 선진국 중에서 으뜸 수준이다. 대외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잠재력을 유지하는 건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권장하는 방안이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