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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내부자들' 같은 사모펀드… 성급한 규제완화가 毒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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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장관 일가의 사모(私募)펀드 투자 의혹과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 손실 사태, 국내 최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등 사모펀드와 관련한 악재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한국 자본 시장 전체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모펀드 육성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때 알토란 같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에 팔려나가는 악몽을 경험한 뒤 토종 자본을 키우자며 시작됐다. 그렇게 육성된 대형 사모펀드들은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서 '큰손'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모펀드는 육성 취지가 무색하리만치 감독의 끈이 느슨한 틈을 타 자본시장법을 교란하고,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등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최근 사모펀드 관련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유들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금융 당국의 성급한 규제 완화와 함께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미숙했던 실력과 직업윤리 부재 등을 이유로 꼽는다.

①성급하게 진행된 규제 완화

금융 당국은 2015년과 작년 두 차례 큰 폭으로 사모펀드 관련 규제의 빗장을 열었다. 2015년 금융위원회는 전문투자자형 사모펀드, 이른바 한국형 헤지펀드 투자의 최저한도를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내렸다. 글로벌 저금리로 갈 길 잃은 자금들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준다는 사모펀드로 몰렸다. 그 결과 DLS 사태에서 보듯 가족들의 돈을 끌어모아 1억원을 투자해 원금을 날린 '비전문' 투자자들이 발생했다. 미국에선 사모펀드 투자자 기준을 건당 투자액이 아닌 '투자 잔고에 500만달러(약 60억원) 이상 소유한' 고액 자산가로 못 박고 있다.

작년 9월에도 금융위는 사모펀드 투자자 수 상한을 49인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하고, 사모펀드가 소규모 투자를 해도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규제 완화안을 발표했다. 국회에 관련 법안들이 계류돼 있지만 사모펀드 붐을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작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연중 투자액(16조4000억원)과 신설 펀드 수(198개)는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09년 127조원에 불과했던 전체 사모펀드 투자액(출자 약정액)은 지난 6월 말 461조원으로 4배 가까이 커졌다. 2014년 248개였던 사모펀드 운용사는 지난해 499개로 급증했다. 한 금융사 직원은 "두 차례 댐 문을 열었더니 하류에 홍수가 나기 직전이다"라고 말했다.

②규제 완화를 누리기에 미숙했던 시장

금융권에선 잇따른 사모펀드 관련 사고에 "부족한 사모펀드 역량과 윤리 의식 결여가 겹쳐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조국 사모펀드에서는 일가족이 투자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바지 사장'에게 투자 운용을 지시하고, 공직자윤리법에 반해 편법으로 비상장 주식에 직접 투자한 뒤 관청 일감 몰아주기로 주가를 조작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또 펀드 투자 손실을 이면 합의로 보전받는 등 위법 의혹을 받는 행위를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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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내부 통제 시스템이나 자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형 사모펀드들이 난립하며 부작용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4년 신설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중 설정액 1000억원 이하 소형 비중은 55%였지만 지금은 80% 수준으로 높아졌다. 100억원 미만의 초미니 사모펀드도 80여개나 된다. 한 사모펀드 임원은 "동네 치킨집처럼 사모펀드들도 수백 개가 생겼다가 금세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 소형 사모펀드들은 대부분 운용 성과 대신 투자액의 일정 부분을 뗀 펀드 관리 보수로 연명한다. 그만큼 운용사가 개인 투자자의 사설 자금 관리처로 전락하기 쉽다는 뜻이다.

라임자산운용은 국내 헤지펀드 1위임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이 몰려들자 현금화하기 어려운 부실기업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에까지 투자했다. 실제 이 회사가 투자한 코스닥 기업 4~5곳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상한 음식을 먹다가 배탈이 난 셈이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수수료 수익에만 집중한 나머지 고위험 파생 상품들을 별다른 심사 없이 마구 판매했다. 해외 금리 연계 DLS가 원금을 까먹을 위험이 있음에도 '원금 손실 확률 0%'라는 마케팅 자료를 판매에 활용했다. 은행은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악용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이 갑자기 만난 자유를 누리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된 듯하다"고 말했다.

③과도한 비밀주의가 오히려 독

사모펀드는 '익명성'이 특징이다.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의 자금줄로 활용하자는 차원이다. 그래서 경영참여형의 경우 운용사(GP)의 인적 사항 등을 세세하게 금융 당국에 보고한다. 하지만 투자자(LP)에 대해선 개인인지 법인인지 정도만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밀주의가 오히려 투자자와 운용사 간의 유착을 부추길 때도 있다. 조국 사모펀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투자자가 국민연금 등 기관인 경우는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므로 투자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만, 개인 자산가가 투자하는 경우는 감독 사각지대가 펼쳐진다. 임승준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소규모 사모펀드를 금융 당국이 감독할 방법이 없어 내부자들끼리 무슨 '작전'을 펴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익명성을 지나치게 침범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악용하는 세력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가 개인으로만 이뤄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라면 일단 수상하므로 금감원이 들여다봐야 한다"며 "적어도 투자자와 운용사가 무슨 관계인지만 공개해도 이런 음침한 거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④엄정한 처벌 인식 부족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는 운용과 투자에 높은 수준의 자유를 허락해준 만큼 그 자유를 남용했을 경우 철저한 처벌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은 계속 활성화하되, 위법 행위는 엄정히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 출신 버나드 메이도프가 헤지펀드를 이용해 650억달러(약 77조원) 다단계 금융 사기를 벌여 2009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글로벌 사모펀드 업계에선 유명하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도 시세 조종을 통한 부당이득이 50억원 이상인 경우는 최고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 최대 과징금은 20억원이다. 아직까지 금융 당국은 사모펀드 시장 육성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DLS 불완전 판매, 정치권 사모펀드(조국 펀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 악재가 반복되고 있어 개인 투자자 보호 입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며 규제 강화로 선회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사모펀드의 시초] 국왕·귀족·상인 후원으로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사모(私募)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사인(私人) 간의 계약에 근거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의 감독을 거의 받지 않는다.

시초는 15세기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지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국왕·귀족·상인들의 후원을 받은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수익금은 투자액의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 조건이었다. 1901년 미국의 금융상인 JP모건이 카네기 철강회사를 4억8000만달러에 인수한 게 현대적 개념의 최초 비상장지분(Private Equity) 투자였다. JP모건은 인수합병을 통해 이 회사를 미국 최대 철강사인 US스틸로 키웠다.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는 경영참여형과 전문투자자형(헤지펀드)으로 나뉜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기업 지분에 투자해 경영권 참여, 사업·지배 구조 개선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펀드다. 2004년 도입됐다.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그로스캐피털(Growth Capital)', 저평가 기업에 투자해 지분 가치를 높이는 '바이아웃(Buy-out)' 등의 투자 전략을 쓴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주식·채권·파생상품·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로 2011년부터 시작됐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내는 '롱숏', 거시경제를 통계분석해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전략 등을 구사한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기업 지분에 투자해 경영권 참여, 사업·지배 구조 개선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사모펀드. 49인 이하 투자자들이 최소 3억원 이상씩 투자한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주식·채권·파생상품·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로 한국형 헤지펀드로도 불림. 49인 이하의 투자자들이 최소 1억원 이상씩 투자한다.





최형석 기자(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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