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나오는 장차관 차출설… 정파적 이해 없는 정책관리 가능할까
고기정 경제부장 |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옥중에서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왔다. 신문에 본인 관련 언급이 있어서 안부를 물을 겸 펜을 들었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첫머리에서 감옥에서 편지를 쓰려니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주에서 지구가 티끌 같은데, 그 지구에서 또 티끌 같은 인간에게 희로애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썼다. “요즘 감옥에서 운동 나가 1년 내내 꽃을 피우며 티끌 같은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 그리고 그 민들레 홀씨만 한 개미들이 부지런히 다니는 것을 보며 그들과 친구가 되어 지낸다”고도 했다. 세간의 평이 어떻든 한때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그에게 인간적 연민이 느껴졌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다. 불같은 성격에 주변과 잘 타협하지 않는 독불장군식 언행을 보이긴 했지만 정통 경제관료라는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대단했다. 사법적 판단까지 내려진 상태인 만큼 이제는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장관 재직 시절 입에 달고 다녔던 “국가와 민족에 봉사할 마지막 소임”이라는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강 전 장관 편지를 소개하는 건 이젠 모든 걸 다 내려놓았을 그가 ‘규제에 대한 두 가지 역설’이라며 읽어줄 것을 부탁해서다. 첫째 역설은 규제의 50%는 대통령과 청와대, 30%는 장관의 아마추어적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아마추어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건 국회 등 여론의 동향에 대통령과 장관이 전후 맥락 없이 대응하게 돼 결과적으로 밑에선 필요 없는 규제를 만들어 낸다는 뜻에서다. 공유차량 서비스 도입을 놓고 택시업계 등이 반발하자 우왕좌왕하는 정부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둘째는 규제형평법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는 규제를 새로 도입할 경우 그에 맞춰 해제할 규제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평가를 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남긴 공과와 무관하게 DNA에까지 박혀 있는 듯한 관료로서의 자세 하나만은 인상적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관료 차출설이 끊이지 않고 있고, 누구는 이미 모교 행사에 다니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어 더 그런 듯하다.
장차관이 선거에 나가든 말든 그건 본인 선택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공무원이 정치나 정권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파적 이익과 결탁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잘 훈련된 관료가 기성 정치인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선거에 끌려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관료가 장차관 자리를 여의도행을 위한 경력 쌓기용으로 생각하거나, 역으로 더 높은 자리를 꿰차기 위한 보험료 용도로 선거 출마를 준비한다면 정파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선거를 앞두고 장차관들이 낮에는 정부 청사에 있지만 밤이면 여의도나 지역구에서 더 자주 보인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장차관 집무실 책상엔 특정 지역 신문이 별도로 올라가고, 공보실에선 지자체 여론 동향에 더 민감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집행하는 예산과 행정력이 공정하게 배분될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런 장차관이 있는 부처에서는 일찌감치 차기 인사에 정신을 빼앗겨 업무 강도 역시 떨어지기 마련이다. 선거철만 되면 관가가 뒤숭숭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예전에는 이헌재 부총리나 윤증현 장관처럼 정권에 ‘노(No)’라고 하는 관료도 있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거나, 소신을 갖고 공직에 임하는 게 자랑이던 시절이었다. 차기 총선에 나간다는 관료들은 공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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