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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노트북을 열며] 공개소환 폐지, 박수 전에 반성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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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선욱 사회2팀 기자


경영 고문 부정 위촉 의혹으로 11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 소환된 황창규 KT 회장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피해 조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이 소환 시기를 알리지 않고 오전 7시쯤 황 회장을 부른 것이다. 경찰은 한 시간이 지난 뒤 황 회장 소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취재에 응했다.

이는 최근 검찰이 공개소환 금지 원칙을 발표한 뒤, 민갑룡 경찰청장도 “경찰도 (검찰의) 그 기조에 맞춰 (공개소환을 금지) 해야 한다고 본다”(7일 출입기자 간담회)고 밝힌 데 따른 조치였다. 그렇게 황 회장은 경찰의 적용 사례 1호가 됐다.

다만 조사를 마친 황 회장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를 거쳐 귀가하면서 결국 카메라에 노출됐다. 그렇지만 황 회장 측이 직원·민원인이 다니지 않는 다른 경로를 통한 귀가를 요구했다면, 이에 최대한 협조했을 거라는 게 경찰 내부의 시각이다. 선팅으로 안이 보이지 않는 차를 타고 검찰청사 지하주차장을 이용해 귀가하는 정경심(조국 법무부 장관 부인) 동양대 교수처럼 말이다.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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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되는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도함으로써 얼마나 큰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켜왔는지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였다. 결국 공개소환은 긍정적 가치보다는 피의자가 정신적 상처를 입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이번 달부터 폐지된 상태다.

다만 이런 변화가 권력자와 그 가족에 대한 수사와 맞물려 시행됐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그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포토라인 앞에 섰는데, 결국 ‘살아있는 권력’이 카메라 앞에 서기 전 그 제도가 사라졌다는 점은 그 자체로 사실이다. 버닝썬 사건에서 빅뱅의 승리는 수퍼스타였고, ‘땅콩회항’ 사건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재벌가 딸이었지만 정치적 권력은 없었고, 그래서 공개소환 문제라는 게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공개소환 관행이 막을 내리는 데 정파적 요구가 반영됐다는 점까지 나쁘게 볼 생각은 없다. 시민 입장에선 나와 뜻을 같이하는 정파의 누군가가 소환을 앞뒀을 때, 포토라인 관행에 대한 문제점을 고민해서 의견을 내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검·경의 공개소환 폐지 결정을 찬성하는 여론주도층 인사나 위정자라면 그동안 과거 사례를 눈감아온 데 대한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한다. 공개소환을 받았던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들며 ‘우리 편도 당했다’는 논리로 대응하는 건 정당성도 없고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최선욱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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