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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나현철의 시선] 저금리에 갇힌 대한민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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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못 따라가는 개인·퇴직연금

노후 의욕 끓기고 부동산만 활황

현재보다 미래 대비하게 해야

중앙일보

나현철 논설위원


올 초 10년 넘게 유지해오던 연금보험을 깼다. 가입 때 생각은 이랬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1400선으로 떨어져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니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연금보험을 들면 반드시 수익을 낼 것이라는 심산이었다. 생각은 들어맞는 듯했다. 주가는 꾸준히 올라 2400을 넘겼다. 주식 수익률만 50%를 훌쩍 넘으니 연금보험이 꽤 쏠쏠한 수익을 냈을 듯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0년 내내 연금보험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알아보니 보험사가 떼가는 수수료가 20%에 달했다. 이러길 10년, 해지하고 받은 돈은 원금 1000만원에 수익 1만2000원이었다.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고 10년을 유지했지만 결국 보험사 좋은 일만 시켰던 셈이다.

필자만 이런 게 아니다. 저금리라는 말이 고착화된 지 오래다. 2008년 금융위기로 각국이 앞다퉈 금리를 내린 뒤 금리는 좀처럼 연 3%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로금리가 모자라 양적 완화를 썼던 미국은 고사하고 한국도 2009년 말 5.25%를 찍은 뒤 10년간 1~2%대의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상품들의 수익률이 좋을 리 없다.

민주당 제윤경 의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보험사가 판매한 연금보험 상품 1028개 중 57%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사 상품 550개 중 345개, 손보사 상품 478개 중 249개가 손실을 봤다. 생보사 상품의 연감 평균 수익률도 2013년 -0.8%, 2016년 -2.7%, 2018년 0.2%로 은행 예금 이자보다 못하다. 은행 연금도 다를 바 없다. 은행들의 2015~2017년 3년 수익률은 기준금리 수준인 연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은행이 받아가는 수수료는 크게 늘었다.

흔히 ‘노후 대비에는 3종 세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 퇴직, 사적연금이다. 이 중 사적연금은 이미 허물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식은커녕 원금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다. 퇴직연금도 위태롭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1년간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은 확정급여형(DB) 1.48%, 확정기여형(DC) 1.76%, 개인형퇴직연금(IRP) 1.35%에 불과하다. 그동안 오른 물가(1.5%)와 비교하면 사실상 제로 금리다.

버티고 있는 건 오직 국민연금뿐이다. 지난해 한때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올 9월까지 수익률이 8.88%로 낮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내는 돈이 고정돼 있을뿐더러 노후를 대비하기엔 충분한 액수가 아니다. 결국 저금리라는 세계적 현상이 국민들의 노후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유일하게 오르는 자산인 집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한 사람이 지난해 상반기에만 3만5000명을 기록했다. 2015년 3만 명도 안 됐고 이듬해 4만 명, 2017년 5만 명으로 늘어나던 해지자가 연 7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중도해지를 택한 사람 4명 중 3명은 30대와 40대였고 인출 사유는 대부분 집이었다. 서울 집값이 지난해에만 8% 오른 덕이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연금이 보장할 미래보다 집이 보장하는 현재를 더 믿게 됐다는 얘기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이런 현상을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돈을 빌려도 미래 부담(이자)이 적은데 누가 돈을 빌리지 않겠는가.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보다 현재의 부를 보존하고 불리는 데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지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금리를 마구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세계 경기가 고꾸라지고 국내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라도 지키려면 저금리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니 저금리와 불경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깨지긴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돈이 넘쳐난다는 데 국민들은 막상 쓸 돈이 부족한 상황이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그 돈이 일반 국민들의 경기에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풀려면 중앙은행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상으로 돌지 않는 돈을 정부가 직접 전달해 현장의 경기를 살려야 한다. ‘소주성’이라 비판받는 정부 정책에도 이런 역할이 어느 정도 감춰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집값을 잡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현재의 부’를 상징하는 집값이 잡혀야 사람들이 미래의 부를 위해 일하게 된다. 그래야 기업 투자나 저축을 살릴 수 있다.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현재’에 갇힌 대한민국을 구출할 현명한 정책이 필요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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