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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깜깜이’ 월드컵 예선…응원단 없이 휴대폰 두고 평양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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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열리는 남북축구 평양전

북 거부로 직항 불발 베이징 경유

“판문점선언 이전 돌아간 분위기

내년 올림픽 단일팀 되겠나” 우려

중앙일보

한국 축구 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이 열리는 북한 평양으로 출국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표팀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14일 평양에 도착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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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에서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르는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 호’가 13일 ‘외로운 방북길’에 올랐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해당하는 직항로 이용, 응원단 파견 등을 예외로 인정받는 데 힘들게 성공했지만 정작 북한이 전혀 협의에 응하지 않아 선수단만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선수단은 15일 오후 북한팀 성원 인파로 가득찰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응원단 한 명 없이 ‘나홀로 경기’에 나서야 한다.

55명 안팎의 벤투호는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1박한 뒤 북한 비자를 받아 14일 평양에 입성할 계획이다. 15일 경기를 치른 뒤 16일 다시 베이징을 거쳐 귀국한다. 항공기로 40분 거리를 이틀에 걸쳐 가게 되는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한국 교포들이 각종 행사와 운동경기를 응원한다”며 “아마도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응원단 한 명 없이 경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경기가 냉각된 남북관계 복원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 정부는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때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내려왔고,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며 “스포츠 교류로 정치적인 화해가 될 수 있었는데 무산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선수단은 경기 이외에 대북제재 위반 여부도 신경써야 하는 ‘부담’도 안고 간다. 당국자는 “미국이 경기에 필요한 물품의 북한 반입은 허용했지만 물품을 되가져 온다는 전제”라며 “선수들에게도 주의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팀은 미국 중심의 다국적기업 N사의 후원을 받는데, 유니폼은 물론이고 양말과 경기용 스타킹 등을 되가져 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수단이 중국 베이징을 떠나는 순간부터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은 불안 요소다. 외교 소식통은 “외부에서 가져간 휴대전화는 북한 지역에서 로밍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데다 휴대전화 반입 자체가 자칫 대북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며 “선수들의 휴대전화와 미국산 노트북 등은 모두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보관하다 선수단이 경기를 마치고 베이징에 돌아오면 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평양에 머무르는 2박3일간 연락이 두절된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이 우리 선수단이 한국으로 전화할 수 있도록 숙소의 국제전화를 열어 주거나 e메일 또는 위성전화 사용을 허용할 수는 있다. 또 국제전화가 안 되는 내국인 전용 휴대전화를 임대해 선수단끼리의 소통은 도와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선수단이 경기장이나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경우엔 서울에서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나라에 머물 때처럼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축구 대표팀의 북한 원정경기에 관여하는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판문점 선언(4월 27일)과 평양 공동선언(9월 19일) 등으로 남북이 사회·문화·체육 분야 교류를 확대하는 데 합의했지만 과거로 되돌아간 분위기”라며 “이 분위기가 지속되면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년 도쿄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나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도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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