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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산책자]간장게장과 허난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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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굶주림’ 극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굶주림은 수십만년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자연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인류는 늘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인간의 DNA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새겨져 있다.

경향신문

며칠 전 중국 소설가 류전윈 선생이 방한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신작 소설 초판을 90만부나 찍을 정도로 중국에선 잘나가는 거장이다. 그의 소설을 보면 먹고살기 위해 발악하고, 배신하고, 사기 치는 인간 군상이 자주 등장한다.

식사 자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값비싼 소고기를 대접했는데도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밑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을 쪽쪽 빨아 가면서 너무 잘 드시는 모습이었다. 혼자만 먹는 게 미안했던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자, 함께 온 일행에게 반찬 그릇을 건네주면서 권했다. 그래서 주방에 하나를 더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류 선생은 새로 나온 게장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중국에도 간장게장이 있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는 상하이에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게장 먹는 모습이 유난히 신경 쓰였던 것은 류 선생이 중국 허난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펴낸 <1942년을 돌아보다>는 1942년에 일어난 허난성 대기근을 다룬 소설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근 당시 온 가족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기차 지붕 위에 타지 못했던 여동생을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그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1942년 6월부터 허난성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땅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해 10월이 되자 하늘에선 기다리던 비는 내리지 않고 메뚜기 떼가 내려왔다. 메뚜기 떼는 눈에 보이는 모든 작물을 싹 다 먹어치웠다. 밭 한 마지기를 먹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메뚜기는 엄청나게 많은 애벌레를 깠는데 애벌레들이 뭉쳐서 거대한 공처럼 굴러다녔다. 애벌레의 먹성은 성체 메뚜기 못지않았다.

사람들은 초근목피를 먹기 시작했다. 느릅나무 껍질은 고급 요리에 속했다.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러기 똥도 귀했다. 그 안에 소화되지 않은 곡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화 잎, 호두 껍데기, 콩 꼬투리, 옥수숫대, 콩 줄기 등은 잘게 부숴서 말린 다음 밀가루처럼 만들어 먹었다. 목화 잎을 먹은 사람은 몸이 붓고 마비되며 치아가 빠졌고, 옥수숫대를 먹은 사람은 변이 뭉치고 하혈을 했다.

재난은 1943년까지 이어졌다. 인간시장이 열려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오빠가 여동생을 팔았다. 한 남편은 돈을 받고 아내를 팔았는데 팔려가는 아내가 내 옷이 당신 옷보다 더 새것이니 바꿔 입자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소리 지르고 울면서 아내에게 같이 굶어 죽자고 했다. 이윽고 사람이 사람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부부는 친딸을 먹었고, 아내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가다 길에서 굶어 죽었다. 그러나 사람을 먹은 사람 또한 결국 굶어 죽었다. 허난 대기근은 도합 3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가고서야 멈췄다. 대기근이 발생한 것엔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지독한 가뭄과 메뚜기 재해도 있었지만, 1937년 중국군이 일본군의 서쪽으로의 진격을 막으려 황허강의 제방을 터뜨리면서 광대한 농지를 폐허로 만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허난 지역에 주둔했던 탕언보의 부대가 저지른 약탈, 농산물로 세금을 거두는 정책에 따라 가혹하게 수탈했던 탓도 컸다.

나는 2013년에 허난 대기근을 다룬 <1942 대기근>이란 책을 번역해서 펴냈는데 중국 기자 3명이 당시의 상황을 취재해 세상에 내놓은 논픽션이다. 무려 70년 만에야 억눌렸던 대기근의 역사적 실체가 대중의 앞에 드러난 것이다. 기자들이 집필하면서 참조한 책은 바로 류전윈의 <1942년을 돌아보다>였다. 류전윈은 고향의 부모 세대가 겪은 그 참혹한 역사에 대해 침묵하는 일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일본군에게 새어 나갈까 봐 강 주변의 사람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황허강의 제방을 폭파시켜 강을 범람시킨 위정자들의 결정에도 분노했을 것이다. 황허강의 범람은 1250만명의 이재민을 만들어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허난성 사람이었다.

간장게장을 먹는 류 선생을 보고 있자니 그 뒤에 버티고 선 굶주림의 귀신을 함께 보는 것 같았다. 지푸라기를 입에 물고 길바닥에 누워 굶어 죽어가던 허난 여인의 눈빛도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 역사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 식사 후 헤어지면서 류 선생과 악수를 했다. 굶주림이라는 역사의 강을 건너온 그의 손은 부드럽고 온화했다. 뭔가 다행스러운 기분이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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