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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국가기념일] ② "'나도 참여자' 밝힐 토양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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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시위 참여했다가 50여일 옥살이

"국가기념일 지정 반기지만 기념식만 치르는 형식화·관제화는 경계"

연합뉴스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한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최갑순(63)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부마민주항쟁(이하 부마항쟁) 관련자들이 '나도 참여했다'라고 떳떳이 밝힐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3학년 때 부마항쟁 시위에 참여했다 붙잡혀 50여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마산지역 부마항쟁 기념단체인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정기총회에서 제10대 회장에 선출됐다.

최 회장은 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반기면서도 기념식만 거창하게 치르는 형식화, 관제화는 경계했다.

그는 또 부마항쟁 국가기념일을 부산 시위 시작일인 10월 16일로 정하고 제1회 국가기념일을 마산에서 개최하는 것은 당시 부산, 마산시민의 연대 정신을 계승하는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최 회장과의 문답.

-- 부마항쟁을 어디서 어떻게 겪었나.

▲ 부마항쟁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박정희 철권통치 18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머리 모양도 마음대로 못하고 치마도 함부로 입지 못했다. 노래조차 맘 놓고 부르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정권을 연장하려고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 입과 귀, 온갖 욕구를 틀어막은 시대였으니까. 소설이나 읽던 국어교육과 3학년 여학생인 내가 시위에 나설 정도였으니, 국민 대다수가 나하고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마산은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경험이 있는 곳이다. 당시 경남대생들은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학우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신변 걱정을 하지 않고 모두 시위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16일 부산에서 먼저 시위가 발생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거사(10·26 사태)가 없었다면 시위가 전국으로 퍼졌을 거다.

나는 부마항쟁이 부산에서 마산으로 확산한 날인 10월 18일 3·15 의거탑 근처에서 다른 학생들과 연행됐다.

마산경찰서로 잡혀가 50일 정도 구금됐고 12월 초에야 마산교도소를 나왔다.

-- 발발 40년이 지났어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소개해 달라.

▲ 박정희 정권 때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군경은 부마항쟁에 참여한 학생, 시민을 마구잡이로 잡아서 때렸다.

잡힌 학생, 시민들이 빼곡히 들어찬 유치장은 신음이 그치지 않았고 피 냄새가 진동했다.

무차별로 얻어맞아 두개골이 벌어진 채로 갇힌 사람도 있었다.

나도 4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 일이 눈앞에 선하고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 정부가 40년 만에 부마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감회는.

▲ 우리 스스로 부마항쟁을 매년 기념하고 잊히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 친 것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정부가 부마항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분명히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마항쟁이 앞으로 관제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념식만 거창하게 하면서 형식화하는 등 껍데기만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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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축하
(창원=연합뉴스) 24일 저녁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축하식이 열리고 있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최갑순 회장. 2019.9.24 [창원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첫 국가기념식이 창원에서 열린다. 어떤 의미가 있나.

▲ 10월 16일 부산시민이 먼저 시위를 시작했다. 마산은 18일 나섰다.

시위 시작 날짜가 달라 지금까지 부산(16일)과 마산(18일)은 각자 시위 시작일에 맞춰 기념식을 따로 개최했다.

시위 규모도 부산이 컸다. 정부 공식 기념일을 부산지역 시위 시작일인 '10월 16일'로 정하고 1회 기념식을 마산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은 부마항쟁 정신을 어느 한쪽이 독차지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봐야 한다.

40년 전 독재에 저항한 부산, 마산시민의 연대 정신을 살려 기념일을 정한 것이다.

앞으로도 부산과 마산에서 돌아가면서 기념식을 할 것으로 안다.

-- 부마항쟁은 진상규명도 늦었고 다른 민주항쟁보다 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기념해야 하나.

▲ 경제도 어려운데 자동차 후진 기어 넣듯 과거 민주화 운동 이야기만 해서 되겠냐는 의견도 있다.

지금 국무총리 소속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가 부마항쟁에 참여한 당사자 신고를 받고 있다.

당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사람만 1천500명이 넘는다. 그런데 신고를 한 사람이 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부마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내가 당사자"라고 용기 있게 나설 만한 토대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이번 1회 국가기념일 때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관련자들을 그동안 방치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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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환영"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허성무 창원시장, 부마항쟁 관련자 등이 18일 부산대에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환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최갑순 회장. 2019.9.18



-- 부마항쟁 남은 과제는.

▲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

원래 2년 기한으로 시작한 진상규명 조사 활동이 1년을 연장했지만, 올해로 끝난다.

부마항쟁 진상규명 활동은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그때는 시간만 낭비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사실상 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가 걸려 있으니 진상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5·16 군사 쿠데타를 찬양하는 발언을 한 친박 인사가 진상규명 위원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최근 부마항쟁 유일한 희생자로 인정된 고(故) 유치준 씨 문제만 봐도 부마항쟁 때 숨진 게 명백한데도 수년을 질질 끌었다.

앞서 밝혔듯이 활동을 더 연장해 피해자 전수조사를 하는 등 방법으로 진상규명을 낱낱이 해야 한다.

늦었지만, 부마항쟁 당사자들이 나도 참여했다고 떳떳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에 하고 싶은 말은.

▲ 우리 세대는 존중받지 못하고 컸다. 인권이라는 말뜻도 잘 몰랐다.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나면서부터 존중을 받고 산다.

옛날처럼 누른다면 지금 세대들은 못 견딘다. 우리가 걱정 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대접받고 존중받으면서 커 온 젊은 세대들이 우리나라를 더 좋은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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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이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웃고 있다.



sea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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