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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그립 센 임종헌에 끌려다녔다” 법원행정처 실장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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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님은 굉장히 그립(쥐는 것)이 센 분이셔서 당신은 ‘논의했다’, ‘협의했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저는) 임 차장님의 카리스마에 좀 끌려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항상 있었습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심준보 판사(53)가 말했다. 심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때인 2016~2017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일했다.

심 판사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의견을 전달하고 재판장 심증을 확인하는 등 ‘재판 개입’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이 참여한 ‘실장회의’에서 이러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법원행정처의 중요 결정은 내부 규정상의 결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고 실장회의에서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반드시 실장회의에서 논의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는 게 심 판사 말이다.

경향신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캐릭터. 박순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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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심 판사는 임 전 차장이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했다. 심 판사도 법관 경력 25년의 고등법원 부장판사이지만, 임 전 차장이 사법연수원 기수가 자신보다 네 기수, 서울대 법대 학번으로는 7년 위라서 “어려운 선배”였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과 관련해 뜻대로 되지 않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증언을 심 판사는 했다. 김광태 광주지방법원장이 통진당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법원행정처의 참고자료를 전달할 수 없다고 하자 임 전 차장이 화를 냈다고 했다. 심 판사는 “임 차장이 ‘그 양반 항상 그런 식’이라고 역정을 냈다”며 “화를 크게 낸 것은 아니고 좀 짜증을 냈다”고 했다. 심 판사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그 재판장(박길성 판사)은 제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장면이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사법개혁을 주제로 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앞둔 2017년 1월 분위기와 관련해서는 심 판사는 “(임종헌) 차장이 ‘이제 이거 뭐 말려도 듣지도 않고!’라며 화를 슬쩍 내시더니, ‘이 문제는 이제 더 손대지 맙시다!’라고 약간 역정을 내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가 터진 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이었던 최누림 판사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데는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심 판사는 주장했다. 문건 작성의 기초가 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사건 기록을 최 판사가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무실에서 볼 수 있도록 직접 조치해준 게 심 판사다.

그러나 심 판사는 문건 작성은 “지시한 적 없다”고 했다. ‘격무에 시달리던 최 판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했다는 것인가’라는 검사 질문에는 심 판사는 “최 판사가 ‘별종’이라는 점을 알고 본다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문건이 검찰 수사를 저지할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앞서 심 판사가 법원행정처 실장회의에 참여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했다며 징계 청구했지만 지난해 12월 법관징계위원회는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처장은 사법농단 주요 행위들을 임 전 차장이 주도했고, 자신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증언이 끝나고 법정에서 퇴장한 심 판사는 박남천 재판장이 휴정을 선언하자 다시 법정에 들어왔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처장이 앉아있던 피고인석으로 다가간 심 판사는 고개숙여 인사하고 대화를 나눈 뒤 다시 법정을 나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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