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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오늘의시선] ‘조국 블랙홀’ 빠진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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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기간 ‘경제 위기’ 가능성 / 文대통령, 정책기조 변경 선언해야

경제가 조국 블랙홀에 빠졌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국회는 ‘조국’을 놓고 싸움만 벌인다. 대외적으로 한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에 휩싸여 수출이 막막하다. 대내적으로 산업이 무너지고, 기업이 쓰러져 일자리가 줄고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계층 간 갈등이 확산해 사회가 불안하다. 무엇보다 자영업이 무너지고 가계부채가 늘어 서민의 생계기반이 위험하다. 최근 통계청은 경기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24개월째 하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29개월 동안 불황의 고통을 겪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13개월 동안 불황의 고통을 겪었다. 경제가 조국사태 수렁에 빠져 역대 최장기간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일보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동력인 수출이 10개월째 감소세다. 작년 12월 1.7%의 감소율로 시작한 수출이 계속 시장을 잃어 지난 9월 11.7%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수출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고 추락하는 양상이다. 올해 한국 수출의 감소는 세계 10대 수출국 가운데 최대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한국의 1~7월 누적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8.9% 감소했다. 세계 10대 수출국의 교역규모는 같은 기간 2.8% 감소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은 예상밖으로 0.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 6위였던 한국 수출은 올해 8위로 밀렸다. 향후 한국 수출은 날개 없는 추락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가 2%대의 성장률과 3%대의 실업률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것은 정부의 재정팽창 때문이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지출을 확대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린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복지지출을 늘려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을 강조한다. 국가채무 증가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 재정확대 정책을 펴 소득주도성장을 이끌겠다는 기조다. 본예산 기준으로 올해 예산은 470조원에 이르고, 내년도 예산은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는다. 정부가 재정 확대정책을 무분별하게 추진하면 국가부채가 증가해 궁극적으로 경제정책 기능을 잃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10%에 이른다. 한국은 국가채무비율이 아직 40% 이하다. 정부는 재정팽창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국가가 처한 상황과 경제의 질을 무시하고 단순히 채무비율만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 경제의 경우 자생 기반이 취약하고 대외의존도가 높다. 국가부채 수준이 낮아도 부도위험에 처할 수 있다. 사상 최악의 고통을 가져왔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올 들어 국가부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8월까지 관리재정수지가 49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채무가 697조9000억원에 달한다. 세금을 살포하는 정책이 정부를 부채의 덫에 묶고 경제위기를 재촉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 현 상태로 갈 경우 한국 경제는 위기를 면하기 어렵다. 이미 증권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작년 1월 2600에 육박했던 종합주가지수가 외국자본의 이탈로 2000선으로 밀렸다. 한시바삐 경제가 조국 블랙홀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애로를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민간경제의 활력을 위해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책과 규제완화 등을 주문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경제가 조국 블랙홀에서 벗어나 올바른 궤도로 들어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과거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여러 번 관련 정책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혁신성장은 자취를 감추고 경제는 역주행을 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산업현장과 민생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가 위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책기조의 변경을 선언해야 한다. 다음 국회와 소통해 여야의 힘을 모으고 규제개혁, 산업구조조정과 혁신, 창업과 투자활성화 등의 정책부터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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