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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의 서양사람] 당통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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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한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게오르크 뷔히너는 1837년 스물넷에 요절한 독일 극작가로 많은 희곡을 쓰지는 않았다. 노동자들로만 등장인물을 구성한 세번째이자 마지막 희곡 <보이체크>는 미완으로 남아, 그의 유작에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여 완성시킨 일도 있다. 알반 베르크는 이것을 <보체크>라는 오페라로 만들었다. 단명했기에 남긴 작품이 많지 않지만 오래 살았다면 괴테나 실러 같은 대문호가 되었으리라는 평도 받는다.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명성 높은 문학상이 그의 이름을 딴 ‘뷔히너 상’이다.

뷔히너 최초의 희곡은 <당통의 죽음>이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조르주 당통은 혁명재판소를 만들었다. 그곳에선 혁명의 적이라는 혐의를 받기만 하면 증거 없이도 속결 재판을 통해 처형될 수 있었다. 곧 이런 끔찍한 권력의 집중이 잘못임을 깨달은 당통은 되돌려놓으려 했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바로 이 혁명재판소를 사용하여 당통을 단두대로 보냈다. 죄목은 뇌물 수수와 혁명의 적에게 너그럽게 대했다는 것이었다. 당통은 함께 처형당한 무고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얼마 뒤 로베스피에르 역시 형장에 올랐다.

뷔히너는 당통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집필 단계부터 공권력에 의해 체포될까 두려워했다. 초고를 마무리한 뒤에도 자체 검열을 가해 성적인 풍자 장면을 가미하여 정치색을 완화시킨 뒤에야 비로소 이 작품은 1835년에 출판됐다. 무대 공연을 통해 이 연극이 완성된 것은 뷔히너가 사망하고 65년이나 지난 1902년의 일이었다.

작품의 제3막은 법정이다. 대중은 당통에게 호의적이다. 그러자 재판관들이 휴정을 선언한 뒤 음모를 꾸며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그들이 당통의 방만한 생활 방식을 문제 삼자 대중이 돌아선 것이다. 4막에서 당통과 그의 동지 데물랭이 처형당한다. 당통이 사랑한 아내 쥘리는 집에서 독을 먹고 자살한다. 데물랭이 단두대에 오를 때 아내 뤼실은 함께 죽기로 작정하고 혁명의 적인 것처럼 “국왕 만세”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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