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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이란 무엇인가’ 묻습니다, 이 연극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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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정의일까 허상일까”

“군중심리는 나쁘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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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회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연극 <당통의 죽음>과 <코뿔소>가 비슷한 시기에 막을 올렸다. <당통의 죽음> 속 당통(오른쪽)과 로베스피에르의 모습. 국립극단·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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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통의 죽음’프랑스 혁명 주역 간의 갈등 다뤄

당통 죽음 후 혁명 목적에 궁금증

현대적 재구성 통해 전개도 빨라

라이브 연주 등으로 몰입도 높여


질문은 모든 사유 행위의 출발점이다. ‘○○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발화한 불꽃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 속으로 사유를 끝없이 끌고 들어가곤 한다. 최근 무대에 오른 <당통의 죽음>과 <코뿔소>는 그런 연극들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역사가 인간에게 가까이 올 때 사회집단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리석음과 병적 징후들”(레비스트로스)에 대한 고뇌이기도 하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당통의 죽음’

국립극단은 19세기 독일 문호 게오르크 뷔히너의 데뷔작 <당통의 죽음>을 선보인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조르주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첨예한 갈등을 다룬 얘기다. 1789년 방아쇠가 당겨진 혁명은 4년 만에 왕과 왕비의 목까지 자르며 숨가쁘게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나라 바깥의 압박은 심해져가고, “사람의 머리 대신 빵, 피 대신 포도주”를 요구하는 민중의 동요도 커져간다. 당통은 피로 점철된 혁명의 모순을 발견하고 자포자기적 향락에 빠진다. 동지였던 로베스피에르는 철저한 도덕성과 공포정치를 통해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한다.

작품 중 6분의 1은 실제 역사에서 가공 없이 발췌한 것이라고 한다.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당통과 공화주의로 대표되는 로베스피에르의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당통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혁명의 목적은 퇴색된 채 구호만 남은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연극은 당통이 동료들과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는 데서 끝이 난다. 하지만 연극 밖에서 로베스피에르도 석 달 뒤 당통과 같은 운명을 맞이한 사실을 떠올리면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연극은 혁명 이야기답게 빠르고 힘있게 전개된다.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라이브 연주와 군중들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처음과 끝을 샹송으로 열고 닫는 연극은 하나의 음악처럼 리듬감 있게 전개된다. 이수인 연출가는 “혁명은 허상이고, 매일 이어지는 개개의 삶이 실재하는 전부”라며 “노래는 그 점을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저마다 해석을 할 것 같다. 연출가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공허하고 딱딱한 이념과 다수의 사상이 모두를 지배하는 세상은 반대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도, 민족의 이름으로도, 진보의 이름으로도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억압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정의고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서울 백성희장민호극장. 9월27일부터 10월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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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에서 코뿔소에 둘러싸인 최후의 인간 베랑제. 국립극단·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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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며 소동

실체 의심하며 소모적 논쟁 펼쳐

원작은 인간성 지키는 ‘나’를 강조

연극선 ‘인간으로 살아갈까’ 번민


■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코뿔소’

마포문화재단과 공상집단 뚱딴지는 부조리극 대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를 무대에 올렸다.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가는 이야기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노천카페에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 앞에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나 광장 한복판을 질주한다. 사람들은 코뿔소를 두고 격론을 벌인다. 하지만 이야기 초점이 이상하다. ‘왜 코뿔소가 등장했는가’ 대신 생김새와 종류에 대한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아프리카종일까 아시아종일까, 뿔은 하나일까 둘일까. 논리학자는 코뿔소에 대한 의미없는 이론을 내놓고, 언론 보도는 가짜뉴스로 치부되고, 사람들은 코뿔소의 실체를 의심하며 소모적 논쟁이 이어진다.

처음 코뿔소의 등장을 이상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곧 코뿔소가 된다. 하나 둘, 셋, 넷….

급기야 주인공 베랑제의 친구였던 장도 코뿔소로 변하고,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있던 사랑하는 여인마저 코뿔소 무리에 합류해버린다. “거리엔 온통 코뿔소들뿐이야! 오로지 코뿔소들뿐이야!!”

1957년 발표된 <코뿔소>는 당시 사회에 대한 강력한 우화였다. 유럽을 휩쓴 나치즘의 집단적 광기를 보고 다수의 비정상적 변화를 희곡으로 그렸다. 원작에선 코뿔소로 변하는 군중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나’의 존재가 강조됐지만, 2019년의 <코뿔소>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단순한 이분법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개인과 군중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베랑제는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지킨 영웅이기보다는 코뿔소와 인간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황이선 연출가는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단순히 선과 악이나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군중에 속하려는 습성을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지, 그것이 인간 본능이 아닌지, 애초 코뿔소로 변할지와 인간으로 버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현대적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봤다”고 말했다.

건축 구조물처럼 경사를 따라 3단으로 구성한 세련된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 코뿔소 등장을 박진감 넘치는 북소리로 표현해 몰입도를 높였다. 서울 마포아트센터. 9월28일에서 10월12일까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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