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5496541 0352019100955496541 07 0701001 6.0.14-RELEASE 35 한겨레 0

[ESC] 어떤 ‘구분’도 의미 없던 쿠리치바에서 보낸 몇 날

글자크기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고향 쿠리치바 자랑하는 청년 마테우스

쿠리치바는 브라질의 녹색 도시이자 차별 없는 도시

10살 어린 어머니의 ‘남친’과 친구로 지내는 그

그들 가족과 함께 먹은 저녁은 풍요로워

한국에서 온 친구 J 도시 풍경에 감탄사 연발

거리에서 만난 다문화 청년들, 그들 영혼에 반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당신의 도시나 마을을 사랑하는가? 남미 여행자들은 제 고향을 자랑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존은 음악의 도시 ‘칼리’를 자랑했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파블로는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마을 ‘마르 아술’을 자랑했으며, 볼리비아 출신의 후안은 설산에 깃든 ‘소라타’를 자랑했다. 특히 브라질 출신 마테우스의 자부심은 대단했는데 그의 고향은 ‘쿠리치바’였다.

“쿠리치바는 여느 도시와 달라. 번잡하고 매연으로 가득한 상파울루와도 다르고, 노숙자, 좀도둑, 강도들로 득실대는 리우데자네이루하고도 달라. 인구 190만명이 살지만, 출퇴근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대도시와는 완전 다르지. 깨끗한 공기에 사람들도 착하고 도심 공원도 많고 버스만 타도 약속 시각에 딱 맞춰서 도착할 수 있고 게다가...”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테우스의 쿠리치바 자랑을 세세히 전할 순 없지만, 그의 자부심이 허세는 아니었다. 쿠리치바는 ‘에너지 절약형 녹색 도시’의 모범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로 칭송받고 있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해 세계 수많은 도시가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적용한 버스 전용차선과 간선급행버스의 원조 도시였으니까.

“쿠리치바에 놀러 와. 카이피리냐(브라질 전통 칵테일)와 슈하스쿠(브라질식 숯불구이)를 먹자!”

마테우스와 헤어진 지 9개월 지났을 무렵 한국의 J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 브라질에 볼일이 있어서 갈 텐데, 3주 정도 같이 여행할 수 있을까?” 어디서 만날까, 생각하는데 쿠리치바가 떠올랐다. 이참에 마테우스를 보러 가자!

쿠리치바에 도착한 이른 아침.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버스터미널은 깨끗했고, 여느 터미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가 보이지 않았다. 마테우스의 집은 도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대문을 젖히며 그가 말했다.

“도심을 제외하면 큰길에서 5m 물러나 집을 지어야 해. 꽃나무를 심는 앞마당이지. 그리고 내 땅이라도 절반은 빗물이 스며들게 자연녹지로 남겨놓아야 하고.” 집 뒤로 가자 자연 그대로 둔 마당이 나왔다. “쿠리치바엔 공원도 아주 많아. 몇십년 사이 1인당 녹지 면적이 100배나 늘었지.”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테우스의 어머니는 ‘돌싱’(돌아온 싱글)이었고 저녁이 되자 남자친구가 놀러 왔다. 삼십대인 사내는 어머니보다 열살 가량 어렸고, 대학생인 마테우스와 나이 차는 열살 정도에 불과했다. “친구도 놀러 왔는데 오랜만에 슈하스쿠 파티나 할까?” “좋은 생각이야. 카이피리냐도 마시자!” “넌 고기를 사와. 난 숯불을 준비할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어머니의 남친과 아들 사이라기보단 또래 친구 같았다.

숯불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숯불을 피우는 간편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인처럼 잔가지나 종이뭉치를 불쏘시개 삼아 얼기설기 쌓지도 않았고, 한국인처럼 부탄가스 토치로 숯을 달구지도 않았다. 화장지 한 움큼에 식용유(혹은 도수 높은 알코올)를 살짝 붓고 숯덩이 사이에 꽂은 뒤 불을 붙였다. 불꽃이 올라오자 그 위에 숯덩이를 쌓고, 불길이 옆으로 퍼지면 그 틈을 다른 숯덩이로 덮었다. 순식간에 모든 숯이 발갛게 변했다.

마침 브라질 배구팀이 국제대회에서 결승전을 치르는 날이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개인 경기에서 메달을 많이 따진 못 해. 대신 힘을 합쳐 경기를 치르는 축구나 배구에선 최고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개인기 때문에 브라질 축구가 강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서로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놀기를 잘해서야.” 카이피리냐를 마시며 마테우스가 말했다.

다음날 J가 올 예정이라 도심의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마테우스가 어머니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나섰다. 빌딩이 늘어선 도심으로 접어들고, 마테우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알아? 여름엔 쿠리치바가 유령도시로 변한다는 거.”

“무슨 소리니?”

“브라질 직장인의 연평균 유급휴가는 30일 정도야. 주로 바닷가 펜션을 구해서 온 가족이 함께 여름을 보내지. 한 달 이상 가족들을 데리고 휴가를 보내니 도심의 가게나 식당에 올 손님이 없잖아. 그래서 자영업자도 문 닫고 바다로 떠나고 온 도시가 텅텅 비어 유령도시가 되는 거야. 하하하.”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J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절친’일지라도 여행을 하다 보면 틀어지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J와 동행은 늘 즐거웠다. 가고,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취향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J는 자주 감탄했다. 다른 친구랑 여행한 적도 있는데, 그는 어디서 무얼 보든 흠을 찾아내 불평을 늘어놓았다. 반수 이상 장점보다 한 치의 흠을 지적할 때 자신의 안목이 높아 보일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J는 처음 먹는 브라질 요리에 감탄했고, ‘꽃의 거리’라 불리는 쿠리치바의 보행자 천국을 걸으며 감탄했고, 버려진 채탄장을 공원으로 복원한 ‘탕구아공원’을 산책하며 감탄했고, 철물과 유리로 만들어 식물원처럼 보이는 ‘오페라 데 아라메’ 극장에 감탄했고, 브라질 건축의 아버지가 설계한 ‘오스카 니마이어 박물관’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고, 낮에는 도서관 밤엔 파출소가 되는 ‘지혜의 도서관’을 보고 감탄했다. 감탄을 터트리게 하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도시기도 했지만, 놀라움을 즉각 표현하는 건 J의 자질이었다. 그런 성향은 분명 좋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J는 <인간극장> 피디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자주 쿠리치바에 감탄했다. 시민들은 ‘골목을 돌며 폐지를 모아 파는 사람’ 무시하기보단 에너지 절약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여겼고, 시는 존경의 표시로 그들에게 유니폼을 제공하고 손수레에 일련번호를 부여했다. 그리고 반경 30㎞ 내에서 한 번만 내면 목적지까지 환승이 가능한 버스요금제를 구상한 까닭도 놀라웠다. 가질수록 직장 가까운 도심에 산다. 쿠리치바 구성원들은 ‘승차 거리로 요금을 차등화하면 요금 구조의 불평등은 해소할 수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해소할 수 없다’며 단일요금제에 동의했다.

쿠리치바는 유럽인, 아시아인, 자국민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다문화 사회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어릴 적부터 다른 피부색,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의 친구를 경험하면서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난 갈색 머리, 너는 빨강 머리. 나는 까만 눈, 너는 파란 눈. 나는 노란 피부, 너는 까만 피부. 머리색도, 눈동자 색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우리는 친구!” 타자에 대한 수용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며들었고, 어떤 구분(인종·경제력·성 정체성 등)으로든 다수, 소수로 나뉠 수 있지만 ‘모두가 친구’라는 인식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확장되었다.

하루는 J와 저녁 식사를 하고 도심을 지나는데, 벽화가 그려진 골목이 나왔다. 생맥주 잔을 든 채 대화를 나누는 청년들, 수공예품을 파는 히피들.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유럽계 남녀, 아프리카계 여자. 유난히 어려 보이는 세 사람이 좌판 하나를 놓고 나란히 앉아 팔찌와 목걸이를 파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안녕, 스페인어나 영어를 할 줄 아니?” “난 스페인어, 얘는 영어를 할 수 있어.” 팔찌를 사고 값을 치르는데, 수줍음 많아 보이는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흰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대답을 하며 곁에 퍼질러 앉았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계 마이우와 프랑코는 남매였고, 아프리카계 쎄우는 마이우의 연인이었다. 스무살 남짓의 청춘들. “우린 함께 수공예품을 만들고 팔면서 생활비를 벌어. 너는 여행 중이니?” 방글방글 질문을 잇는 세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그날 이후 주말 벼룩시장에서 드림캐처(악몽을 쫓는 부적)를 파는 세 사람을 찾아가 어울리기도 했고, 길거리 음악 공연을 함께 구경하기도 했다. 그들은 너무나 선량해서 영혼이 유리알처럼 맑을 것 같았다. 마이우와 쎄우는 길을 걷다가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레즈비언인 두 사람이 평범한 연인처럼 키스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웠고, 그런 이웃을 흘겨보지 않는 쿠리치바가 포근했다.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시민이 남미에선 30% 이하다. 유럽과 오세아니아에선 20% 이하, 북유럽의 경우엔 4%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어떨까? 77.6 %(제6차 세계가치조사 결과)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큰 차이 때문에 문득 궁금했다. 성 정체성 뿐 아니라 인종이든 민족이든 이념이든,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법을 우리가 배운 적이 있었던가? ‘단일민족을 자랑스레 여기라’고 주입 받은 기성세대에게 ‘우리 아닌 남’은 늘 배척의 대상이었다.

마이우, 프랑코, 쎄우와 헤어지던 밤을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애틋해져서 가슴 한구석이 저렸다. 저토록 선량하고 여려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더구나 쎄우는 피부색·경제력·나이·성 정체성, 모든 면에서 약자이자 소수자였다. 그러나 나는 오지랖 넓은 염려를 접기로 했다. 이곳은 여느 도시가 아니라, ‘태어난 모든 생명은 가치 있다’고 소리치는 쿠리치바니까!

한겨레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