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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데스크의눈] 북·미협상과 ‘트럼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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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협상 성과없이 결렬 / 대선 앞둔 트럼프 ‘北 치적’ 간절 / 北은 ‘트럼프 시간표’ 약점 이용 / 韓, 또 다른 의미 ‘중재자’ 역할을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을 핵심 근거지로 한 ‘조국 대전’과 ‘검찰개혁 논쟁’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는 동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7개월 만에 재개된 북·미 실무협상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된 것이다. 2주 이내 협상 재개에 대해서도 북한이 날 선 반응을 보이면서 연말까지 북·미 관계 진전을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번 스톡홀름 협상에서는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과는 ‘같은 듯 다른’ 모습이 포착됐다. 두 차례 모두 양측의 기대 수준이 달랐다는 점은 똑같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영변 플러스 알파(+α)’ 의미에 의견을 달리했다. 스톡홀름에서도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입장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미국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

박종현 외교안보부 부장


시차만큼 변한 점도 감지됐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과정에서는 북한의 행보가 도드라졌다. 하노이에서는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지만, 스톡홀름에서는 미국이 여지를 두는 상황을 연출했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실무협상 직후 스톡홀름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미국이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협상 의욕을 떨어뜨렸다”며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튿날엔 “역겨운 회담이었다”며 “(스웨덴이 초청한) 2주 이내 회담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말을 아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회담 결렬 이후 특별한 성명을 내놓지 않았으며, 국무부는 “미국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북한과 좋은 대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북한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 결렬 선언을 주도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가동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7개월 만에 뒤바뀐 듯한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우선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과 미국의 ‘새로운 방법’이 달랐을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따른 체제보장을 포함한 상응조치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였을 개연성이 크다. 미국은 북한의 ‘영변 플러스 알파’ 조건 수용이 선결조건이라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보인다. 선결조건이 해결되면 북한에 대한 석탄과 석유 금수를 부분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는 이야기다.

서로의 생각이 달랐다는 점이 상황 변화의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스톡홀름 결렬 이후 쫓기는 측이 어느 쪽인지를 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의 현상 유지 내지 소기의 성과를 자랑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이 국내 정치적 일정에 북·미 대화를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북한이 이를 간파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내 정치 변수가 북·미 대화에 영향을 미친 정황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노이에서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결렬 선언엔 자신의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었다. 코언의 ‘나쁜 증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과 합의하기는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우크라이나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부패 의혹을 조사하라고 압력을 가한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의회의 탄핵 위기에 직면해 ‘북한 치적’이 간절한 상황이다. 야당인 민주당 경선후보들의 광폭 행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적절한 선물’은 감동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트럼프 시간표’의 약점을 인지한 북한으로서는 성에 차는 대답을 얻지 못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다시 나설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자존심을 구긴 트럼프 대통령이 시선을 외부로 돌릴 여지도 있다. 그리되면 악몽이다. 2017년 1년 동안 지속됐던 한반도 전쟁설이 미 언론의 지면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트럼프 변수를 잘못 풀어나가지 않도록 우리 정부의 상황 관리가 필요하다. 또 다른 의미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박종현 외교안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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