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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생확대경]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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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과 중앙지검 일대에서 도로를 경계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왼쪽)와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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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사회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를 놓고 벌이는 시민단체, 대학가의 장외대결은 극으로 치닫는 사회 갈등을 시시각각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대편을 무시하고 외면한다. 대립된 의견에서 접점이 찾아질 리 없다. 비단 ‘조국 사태’ 뿐 아니라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진영 갈등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부딪힐 때마다 사람들은 상대편을 짓밟으려는 성질을 발현해 ‘갈등 유발자’가 된다.

갈등이야 늘 있어 왔다지만 몇 해전만 해도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이제는 자기 생각과 다르면 스스럼 없이 ’육두문자’를 내뱉거나, ‘인신공격’으로 받아칠 지경이다. 주관이 뚜렷해진 건가, 극도로 예민해진 건가.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딱 두 개.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챔버(Echo chamber·메아리방) 효과’다.

◇인터넷 이용자, 걸러진 정보만 접해

‘필터 버블’은 인터넷 이용자가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시민단체 무브온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가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정보를 걸러내는 알고리즘(필터)에 정치적·상업적 논리가 개입되면 정보 편향성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데서 비롯됐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아마존과 유튜브·페이스북·구글·네이버 등을 통해 손쉽게 맞춤형 정보를 얻고 있지만, 한쪽 정보만 편식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편견이 생기고 가치관이 왜곡된다.

‘에코 챔버 효과’는 닫힌 방 안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소리만 듣다 보면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게 된다는 의미다. 자신의 생각, 의견과 유사한 정보만을 믿고 나누면서 자신의 믿음이 강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곤 한다. 에코 챔버 안에서 진실은 저 멀리 있고, 자신의 신념과 동일하지 않으면 중요한 정보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가짜 뉴스가 판 치는 배경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에코 챔버’를 꼽는다.

◇같은 성향끼리만 대화..극단 치달아

‘필터 버블’과 ‘에코챔버 효과’는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차단해 ‘확증 편향’을 심화시킨다. 별다른 의심없이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 믿게 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선 이해보다 배척이 앞선다. 어쩌면 둘로 쪼개진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인터넷 등 가상 세계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필터(알고리즘)’로 걸러진 정보로 만들어진 편협한 사고가 ‘에코 챔버’로 확산·증폭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더 심해진다면 정말 아찔한 일이다. 기술 발전으로 알고리즘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대립과 충돌, 갈등이 더 극심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같은 취미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알고리즘은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게 해 결국 하나의 사고만 갖도록 조정한다.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알고리즘 프로그램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편향과 사회 분열, 결코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 알고리즘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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