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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일제 총 썼던 한국군, 이젠 ‘내 몸에 맞춤형’ 소총 쓴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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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해방 이후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은 한반도 남부를 지킬 군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 1946년 1월 남조선 국방경비대를 창설했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조국을 지키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급된 무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쓰던 99식 소총이었다. 군대의 기본인 소총조차 자체 제작하는데 필요한 경제력과 기술을 갖추지 못해 외국의 무기를 그대로 써야 했던 약소국의 비애였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개발된 소총을 장병들에게 공급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성능도 크게 향상됐고 장병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소총이 등장하면서 군 전투력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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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헌벙들에게 검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30여년 동안 미국제 소총 의존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 미국의 군사원조가 이뤄지면서 우리 군에는 미국제 무기가 보급됐다.

미국이 지원한 대표적인 무기는 1936년 미군이 채택한 M1 소총이다. 8연발 반자동 기능을 갖춘 M1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Kar98, 일본군 99식 소총보다 우수한 성능을 자랑해 보병전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은 유럽과 아시아 등의 우방국가에 M1을 지원했다. 해방 직후 소총 생산 기반이 없던 우리나라에도 M1이 대량 공급됐다. 이 때 지원된 M1은 6.25 전쟁에서 우리 군이 북한군과 싸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전쟁 초기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우리 군 장병들이 싸웠던 장소에는 M1이 있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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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수병들이 K1A 기관단총을 든 채 함정 경계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휴전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M1은 시대에 뒤진 무기가 됐다. 1950년대부터 세계 소총 제작기술은 많은 총탄을 연발로 쏠 수 있는 자동소총으로 발전해갔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58년부터 AK47 자동소총을 자체 생산했다. 미군은 M1을 대체할 M14 소총을 만들었고, 이보다 더 우수한 M16 소총을 도입해 베트남전쟁에서 사용했다.

반면 우리 군은 1965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할때까지도 M1을 써야 했다. 휴전 직후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 규모를 늘렸지만, 운영유지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하루하루 호구지책을 찾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새로운 소총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우수한 소총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군은 베트남전쟁 참전을 계기로 미군이 사용하던 M16 소총에 주목했다. 1957년 미국의 총기설계자 유진 스토너가 개발한 M16은 M1보다 가벼우면서도 화력은 훨씬 강했으며, 진동도 적고 명중률도 높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주력 무기로 쓰인 M16은 1968년부터 2만7000정이 우리 군에도 공급됐다. 1974년부터는 국내에서 면허 생산을 시작, 60만정을 생산해 일선 부대에서 쓰이던 M1을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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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KCTC 소속 장병들이 야전훈련을 위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육군 제공


◆국산 총기 개발 시대 개막

M16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대량 생산한 현대식 소총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군 전력증강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군의 기본 무기인 소총을 국내 개발하지 않으면 방위산업 기반을 육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ADD)는 1972년부터 국산 소총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 1984년 우리 군에 채택된 소총이 K2다.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뤄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우리 군에서 널리 쓰이는 K-2는 냉전 시절 세계 소총 시장을 양분하던 M16과 러시아제 AK47 소총의 장점을 혼합한 무기다. 오염물질로부터 뛰어난 안정성을 발휘하는 롱스트로크 가스피스톤 방식은 AK-47의 영향을 받았다. 반면 발사모드 제어 방식은 M16과 유사하며, 5.56㎜ 소총탄을 사용하는 것은 M16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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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KCTC 소속 장병들이 진지에 포진해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육군 제공


여기에 한국인의 신체적 특성을 감안, 총의 길이를 짧게 설계했다. 또한 접이식 개머리판을 적용해 장갑차 탑승 등의 상황에서는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도록 했다. 1985년부터 생산된 K2는 휴전선 일대 전방 부대에 먼저 보급됐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 군과 경찰에도 공급돼 100만정 이상이 만들어졌다. M16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페루, 피지 등에도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으며, 미국 민간총기 시장에도 DR-200 등의 이름으로 수출됐다.

K2 소총과 함께 특수부대 등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관단총 용도로 1975년 개발에 착수한 K1A는 1981년부터 일선 부대에 배치됐으며, 세네갈 등 일부 국가에도 판매됐다. 2000년대 이후 특전사를 비롯한 특수부대의 해외파병이 증가하면서 레일 장치와 PVS-11K 조준경을 부착하는 등의 일부 개량이 이뤄졌다.

K2는 개발 당시에는 우수한 성능을 가진 총기였으나, 전력화가 이뤄진 지 30년이 지나면서 명중률이 떨어지는 등 노후화에 따른 문제점이 발생했다. 미국이 M16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면서 길이를 줄인 M4를 만들고, 총기에 조준경과 레이저표적지시기 등을 부착해 보병의 전투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성능개량을 진행한 만큼 K2도 이와 유사하게 개량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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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 특공대원들이 K1A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채 전방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이에 따라 등장한 소총이 K2C1이다. 2014년 개발에 착수해 2016년부터 배치된 K2C1은 K2의 개량형이다. 우리 군이 성능개량을 할 때는 무기 이름 뒤에 ‘A’를 붙인다. K1A도 개발 초기형인 K1의 성능을 개선하는 의미를 담아 A를 추가했다. 하지만 K2C1은 K2의 길이를 줄여 제작한 수출형 총기인 K2C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K2C1이라는 이름을 썼다.

K2C1의 내부 구조는 K2 소총과 완전히 같아 사거리 등의 성능은 동일하다. 다만 총열 덮개 등을 바꿔 편의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총열 덮개 부분에는 레일 장치를 만들어 미군처럼 조준경을 비롯한 장비들을 총기에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개머리판은 5단계로 길이 조절이 가능해 30년전보다 체격이 커진 장병들이 자신의 신체적 특성에 맞는 사격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준경 등의 장비가 갖춰진 상황에서 사격 자세가 안정되면 명중률이 높아지고, 북한군과의 보병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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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시가지 전투 훈련 도중 건물 진입 절차를 익히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K2C1은 현재 매년 약 5000정씩 전력화가 이뤄지고 있다. 전방사단에는 배치가 완료됐고, 향후 기계화사단과 지역방위사단 등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추가 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2016년 처음 전력화가 이뤄졌을 때는 전방손잡이가 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총열덮개에서 발열 문제가 발생,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부터 방열덮개와 전방손잡이를 부착해 보급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2017년 개선작업 이전에 전력화된 K2C1에도 방열덮개와 전방손잡이를 추가로 장착했다”고 설명했다.

K2C1에 육군이 추진중인 워리어 플랫폼이 추가되면 보병의 화력과 명중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래 전장 환경 변화에 걸맞는 차세대 소총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K2가 개발 전력화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소총 개발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세대 소총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아 K2C1와 K2는 2020년대에도 우리 군의 주력 소총으로 계속 쓰일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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