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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30년 만에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찾고도 웃지 못하는 경찰…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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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수사 기법 총동원해

유력 용의자 특정해 돌아보니

과거 수사 허점 속속 드러나고

애꿎은 사람 잡았던 ‘악몽’까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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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해 30여년 만에 사실상 범인을 검거했다고 밝힌 경찰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된 유전자분석기술 등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사건 발생 당시 주먹구구식 수사가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이아무개(56)씨를 특정한 직후 “공소시효가 끝나 단죄를 하지 못해도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저인망식 수사를 비웃듯 벌어졌던 연쇄살인 사건으로 실추된 경찰의 명예회복은 물론, 국민의 공분과 상처를 씻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밝혀지는 용의자 이씨의 행적과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의 허점을 비롯한 수사행태 등이 속속 튀어나오며 진상규명에 나선 경찰을 오히려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모양새다.

■ 경찰, 수사 금기인 ‘예단’으로 엉뚱한 사람만 잡았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23일 “화성연쇄살인 사건 수사가 한창이었을 당시 이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63년생인 이씨는 1차 사건(1986년 9월15일) 때부터 마지막 10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1991년 4월3일까지 범행 장소 반경 3㎞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용의선상에 올라 경찰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연인원 205만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했던 경찰은 용의자로 지목된 3천여명을 붙잡아 집중 추궁했지만, 정작 이씨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로 몰렸다 풀려나 ‘누명을 썼다’며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가운데는 이씨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5차(1987년 1월10일 발생)와 7차(1988년 9월7일) 사건의 범인으로 낙인 찍힌 2명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당시 경찰은 일부 사건의 증거물 분석 등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을 비(B)형으로 ‘예단’하고 정밀한 수사 없이 마구잡이식 범인 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디엔에이(DNA) 분석을 통해 5·7차 이외에 9차(1990년 11월15일)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이씨의 혈액형은 오(O)형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관은 “여러 정황상 용의자 혈액형이 B형일 가능성이 커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수사에 주력했던 게 사실이다. 수사의 금기인 예단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씨가 어떻게 수사망을 빠져나갔는지에 대해서는)당시 수사관들하고도 얘기해야 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정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수기(손으로 쓴 기록) 등으로 작성된 자료가 15만장에 달하는 등 현재 (그 이유를)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 과거 경찰, 공조도 없었고 수사도 없었다?

이씨는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했다가 1994년 1월13일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당시 재판 기록을 보면, 이씨에 희생된 처제는 목을 졸려 피살된 뒤 손발이 스타킹으로 묶인 채 이씨 집에서 880m 떨어진 곳에 버려졌다.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범행수법과 유사한 대목이다. 게다가 이씨가 화성연쇄살인 사건 현장 부근에서 살았던 점을 들어 혐의점을 폭넓게 수사했어야 하지만, 경찰은 수사 공조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청주서부경찰서는 이씨가 살았던 화성 자택을 압수수색도 했고, 당시 화성수사본부가 용의자를 데려와 달라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공조가 이뤄지지 않아 양쪽 경찰 모두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를 구속했던 퇴직 경찰관은 “화성 사건은 대부분 잘 모르는 여성을 쫓아가 범행을 저질렀는데 청주 사건은 집에서 처제를 상대로 범행했다. 지금은 유사하다고 말하지만, 당시엔 화성 사건과 연결짓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식 서원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잘 아는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둔기를 이용하는 등 범행 수법, 대상이 다르다. 또 마지막 범죄 시점부터 3년 뒤 화성이 아닌 청주에서 일어난 범행이어서 연결짓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킹을 사용한 주검 유기 부분은 눈여겨볼 만했는데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3일 이씨에 대한 대면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기존 사건 기록 검토와 그동안 이뤄진 대면 조사에서 이씨가 한 진술 등을 분석 중이다. 이씨는 지난 20일까지 3차례 이뤄진 조사에서 “나는 화성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줄곧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김기성 오윤주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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