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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CEO LOUNGE] 최고 시련기 맞은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 조 단위 적자인데 공대 설립? 정부 압박 ‘끙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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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1951년생/ 성균관대 행정학/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박사/ 제17회 행정고시/ 특허청장/ 산업자원부 제1차관/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한국지멘스 회장/ 2018년 4월 한국전력 사장(현)


수조원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전력 이사회가 주주 반대에도 한전공대 설립 기본계획을 가결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한전공대 설립에만 수천억원 비용을 부담해야 해 한전을 이끌어온 김종갑 사장(68)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한전은 최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한전공대 설립 및 법인 출연안’을 의결했다.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올해 안에 한전공대 학교법인 설립 절차를 매듭짓기로 했다. 전남 나주시 부영CC 부지 120만㎡에 들어서는 한전공대는 학생 1000명, 교수진 100명으로 학생은 대학원 60%, 학부 40%로 구성된다.

한전은 올해부터 2031년까지 13년간 한전공대 투자·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1조6112억원으로 추산했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부지 상당액 1670억원, 2019년부터 2031년까지 총 13년간 소요되는 대학 설립 투자와 운영비를 모두 합한 금액이다. 5000억~7000억원은 한전이 우선 부담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후속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과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설립·운영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조 단위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한전이 대규모 비용을 한전공대 설립에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전은 지난 2분기에만 2986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상반기를 통틀어서는 영업손실이 9285억원에 달한다. 반기 기준 9000억원대 영업손실은 2012년 상반기(2조3020억원 적자) 이후 처음이다.

매경이코노미

▶올해 영업손실 전망치 1조5000억

한전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에만 2조200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영업손실 자체 전망치도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의 ‘2019~2023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안)’에 따르면 올해 한전 영업실적(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1조5000억원 적자, 부채비율은 지난해 98.7%에서 올해 111.8%로 급등할 전망이다.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이 발전단가가 싼 석탄, 원전 대신 값비싼 LNG, 신재생 전력 구매를 확대하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차입금도 계속 불어나는 모습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62조8000억원에 달했던 차입금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부지 매각 등의 효과로 2016년 53조6000억원까지 줄었다. 그러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차입금이 불어나기 시작해 지난해 말 61조원까지 늘어났다.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7~8월 여름철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확대하면서 한전 부담은 더욱 커졌다. 전국 1629만가구가 월평균 1만원 수준 할인 혜택을 받으면서 한전은 할인금액 2847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한전공대 설립까지 강행하면서 한전 소액주주 불만은 극에 달했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전공대가 설립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반발했다. 한전공대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분야 공대’를 표방하지만 카이스트(대전), 포스텍(포항), 지스트(광주), 디지스트(대구), 유니스트(울산) 등 전국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에 달하는 데다 대학 진학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라 중복 투자 우려가 팽배하다.

장병천 한전소액주주행동 대표는 “한전이 탈원전 정책으로 적자를 보고 있는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한전공대 설립에 7000억원을 투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주주들은 그동안도 한전 적자폭이 커지면서 주가가 떨어지자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한전 주가 하락 피해 탄원, 김종갑 한전 사장의 흑자경영 촉구를 위한 집회’를 잇따라 열고 “김종갑 사장이 주주와 회사 이익을 외면해 한전 실적이 악화됐고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6년 5월 6만3000원대까지 올랐던 한전 주가는 최근 2만원대로 고꾸라졌다(9월 18일 종가 2만5300원).

주주들은 “주식회사를 올바르게 경영할 자신이 없으면 김종갑 사장은 당장 사퇴하라”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을 강요하면서 한전에 부담을 전가하려면 아예 상장폐지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김종갑 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한전이 추진해온 호주 바이롱 광산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인 것도 악재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독립계획위원회는 최근 한전이 제출한 바이롱 광산 개발 사업계획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광산 개발로 온실가스 배출, 지하수 오염, 자연 훼손 등 장기적 환경 영향에 중대한 우려가 있어 개발 허가 발급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이롱 사업은 총 사업비만 7억2800만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유연탄 광산 개발 사업이다. 한전은 2010년 호주 기업 앵글로아메리칸에 4억달러(약 4700억원)를 주고 바이롱 광산을 인수했다. 토지 매입과 탐사비용 등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쏟아부은 비용만 7억달러(약 83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을 둘러싼 악재가 쏟아지면서 김 사장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한전을 이끌어온 그는 관료와 민간 조직을 두루 경험한 화려한 스펙의 인물이다.

대구상고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상공자원부 통상정책과장,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등 산업, 통상, 에너지 분야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특허청장, 2006년 산업자원부 제1차관을 지냈다. 공직생활을 마친 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을 맡아 재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고강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하이닉스 회생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효성그룹 사외이사, 한국지멘스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4월 제20대 한전 사장에 취임했다.

오랜 세월 공직생활과 함께 주요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험을 인정받아 한전 수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전 현안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당장 한전의 최대 화두인 전기요금 인상부터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그는 지난해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고 밝히면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올 초 기자간담회에서도 “전기 소비와 자원 배분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인상이 여의치 않자 한전은 주택용 계시별(계절·시간별) 요금제 도입과 함께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개선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1단계(0~200㎾h) 사용자에게 최대 4000원의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다. 연간 할인액은 지난해 기준 3964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저소득층 지원 성격을 가진 제도인 만큼 요금제 개편이 현실화될지는 의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오히려 인하 방안을 추진해온 데다 재무 지원에도 소극적이라 한전은 진퇴양난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탈원전, 한전공대 설립 등 한전을 둘러싼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김종갑 사장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한국형 원전’ 수출도 얼마나 성과를 낼지 미지수다. 김 사장은 지난 9월 9~12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에너지총회에 참석해 나써 오 알 나서리 UAE 원전사업법인 최고경영자와 ‘제3국 원전 공동진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 체결을 통해 세계 신규 원전 시장에서 투자, 자금 조달, 인허가 등 폭넓은 분야 협력 기반을 구축했다”는 것이 한전 측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한국형 원전에 대한 신뢰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적잖다.

김 사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국민,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기업이 되도록 합시다”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하지만 오히려 주주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숱한 당면 과제를 잘 헤쳐나갈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6호 (2019.09.25~2019.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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