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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13년 집권 헝가리 총리의 독재 플랜, 마무리는 사법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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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장관이 감독하는 '선거·부패·공안사건 전담 법원' 신설 추진

판·검사 정년 낮춰 274명 강제로 퇴직시키고 친여 인사들로 채워

검찰총장·법원행정청장도 측근… EU "삼권분립 훼손말라" 경고

지난 16일 벨기에 브뤼셀의 EU(유럽 연합) 본부에서 헝가리의 사법부 및 언론의 자유 말살 정책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프란스 티머만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는 제도를 전면 철회하라"고 헝가리에 요구했다. 주디트 바르가 헝가리 법무장관이 "헝가리에 대한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항변했지만, 독일·프랑스·핀란드 등 10개국 집행위원들은 "삼권 분립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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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당'이 개최한 청년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13년째 총리로 재임하는 오르반 총리는 법무장관의 감독을 받는 '행정법원' 설립을 추진하는 등 사법부 장악을 시도해 EU(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삼권 분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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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총리로 재임 중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사법부를 무력화시켜 삼권 분립을 훼손하는 데 대해 국내외 비판이 커지고 있다. 오르반 총리가 사법부를 무력화시켜 모든 국가 권력을 한손으로 주무를 수 있는 제도를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실행에 옮기자 EU 등에서 "기본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오르반은 1998년부터 4년간 총리를 지내고 총선 패배로 물러났다. 이후 2010년 총선 승리로 정권을 되찾아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이후 4년마다 열린 총선에서 내리 승리하며 총 13년째 재임 중이다.

오르반식 사법 장악 야욕의 핵심은 법무장관의 감독을 받는 '행정법원'의 설립이다. 오르반이 이끄는 여당 연합이 의석의 3분의 2를 장악한 헝가리 의회는 작년 12월 행정법원을 1년 안에 출범시킨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선거법 관련 사건, 부정·부패 사건, 집회·시위 등 공안 사건 등 정부와 관련된 사건을 기존 법원이 아닌 신설할 행정법원에서 처리한다는 것이 골격이다. 문제는 행정법원 판사에 대한 임용, 승진, 교육의 권한을 대법원장이 아니라 법무장관이 행사한다는 것이다. 통치 체제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의 수사·기소는 물론 재판까지 법무장관이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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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법원 설립안이 통과되자 국내외에서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반발이 나왔다. 특히 EU에서 강한 압박이 가해지자 지난 5월 헝가리는 일단 "행정법원 설립안을 무기한 보류한다"고 밝혔다. 2021년부터 7년간 헝가리에 배정된 EU 보조금 201억유로(약 26조3800억원)가 삭감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 때문이다. 하지만 EU 눈치를 보는 척할 뿐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난 7월 오르반 총리의 측근인 라슬로 쾨베르 국회의장은 "여건이 되면 언제든지 행정법원 설립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행정법원이 아니더라도 이미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사법부와 검찰에 족쇄를 씌워놨다. 먼저 오르반의 최측근을 사법부와 검찰의 정점에 앉혀 장기간 주무르고 있다. 오르반은 2010년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하자 검찰총장 임기를 6년에서 9년으로 바꿨다. 당시 오르반의 측근인 피터 폴츠가 검찰총장에 올라 지금까지 검찰을 지휘하고 있다.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청장도 오르반과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툰데 한도라는 여성이 맡아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재임 중이다.

오르반과 여당 피데스는 2011년 사법 권력 장악을 위한 개헌안을 통과시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정부가 해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11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고, 늘어난 4명을 여당 단독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2년에는 사법부와 검찰을 친여(親與) 성향으로 물갈이하기 위해 갑자기 판사와 검사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바꿨다. 274명에 달하는 판·검사가 하루아침에 강제 은퇴를 당했고, 이들의 빈자리는 오르반 지지 성향의 젊은 법조인들로 채워졌다. 2014년에 오르반은 1990년 폐지한 사형제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했다. 헝가리 야권과 인권단체들은 '공포 정치'를 한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사형제 도입을 허용하지 않는 EU가 나서 압력을 넣은 후에야 오르반은 사형제 부활 추진을 중단했다.

사법부까지 손에 넣어 장기 집권을 하려는 오르반의 야욕에 대해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 의원들은 행정법원 설립 법안이 통과될 때 항의의 표시로 의장석 앞에 나가 2시간 넘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행정법원이 설립되면 헝가리는 사실상 독재 국가가 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2012년까지만 해도 10%가 넘는 실업률을 올해 3.4%(2분기)까지 낮추는 등 오르반이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사법 장악에 대해 국민적인 저항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법부와 관련한 제도적 변화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은 멀게 느끼게 마련"이라며 "이 같은 맹점을 이용해 오르반이 사법 장악 시나리오를 하나 둘 관철해왔다"고 보도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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