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에 항거하는 의지를 삭발로 다짐"…리더십 위기론에 '존재감 각인' 시도 평가
한국당, 청와대 앞서 촛불 연좌농성…黃 "자유민주세력 힘 모으는 계기될 것"
자정 넘겨 7시간 농성…黃 "가짜 촛불 아닌 진짜 촛불 들고 싶다"
야당의 반대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해 정부·여당을 향한 강력한 규탄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추석 연휴 기간 청취한 밑바닥 민심에서 '조국 반대' 기류가 뚜렷하다고 보고, 9월 정기국회가 본격 개막하기 전 여론의 물꼬를 한국당 중심의 보수진영으로 돌릴 절호의 기회라는 전략적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하자 "한국당의 투쟁은 조국 임명 전과 후로 달라질 것"이라며 강력한 대여투쟁을 예고해왔다.
실제로 황 대표는 조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1인 피켓 시위, 장외집회 등을 이끌었다.
당장 추석 연휴 기간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장관 임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절반을 넘겨도 반사 이익조차 챙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와 리더십 위기론까지 번졌다.
이에 황 대표로서도 기존 방식을 넘어 더욱 강력한 대여투쟁 방안으로서 '충격 요법'이 절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단식을 한 적은 있어도 제1 야당의 대표가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황 대표의 '삭발 투쟁'은 그동안 당 안팎에서 불거진 리더십 비판 여론을 불식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 보수진영의 주도권 경쟁을 황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동시에 총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삭발하는 황교안 대표 |
검은색 운동화에 네이비색 점퍼 차림으로 등장한 황 대표는 분수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삭발식을 거행했다.
삭발식은 애국가 4절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약 7분간 진행됐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도 현장에 나와 황 대표를 비롯해 한국당 의원들과 인사했다.
강 수석은 황 대표에게 삭발을 만류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동안 황 대표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이따금 눈을 감았다 뜨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 삭발을 마치고… |
삭발을 마친 황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유린 폭거가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제1야당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는 제 뜻과 의지를 삭발로 다짐하고자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감정이 격해진 듯 몇차례 입장문을 읽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한국당은 어떤 행동이라도 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대변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삭발하는 황교안 대표 |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의 이날 삭발로 일각에서 제기된 '가발 논란'이 사그라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황 대표가 그동안 가발을 이용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으로, 정확히는 모근을 새로 심어 머리가 자란 것으로 안다"며 "오늘 삭발로서 (논란이) 정확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한국당 의원·원외 당협위원장 80여명은 삭발식 이후에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침묵 연좌 농성'을 이어갔다.
한국당 의원들은 '근조(謹弔) 자유민주주의'라고 적은 대형 걸개를 세운 뒤 바닥에는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깔았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한국당 의원들은 '근조' 걸개와 현수막 앞에서 차례로 촛불을 놓았다. 촛불은 연좌농성이 시작된 지 2시간여 만에 120개로 늘어났다.
황 대표는 연좌농성 중 기자들과 만나 삭발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해야 한다고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다할 것"이라며 "지금 중요한 것은 다 합치는 것으로, 처음에 통합을 이야기했는데 여러 의견들을 모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을 놓는 황교안 대표 |
황 대표는 "제1야당 대표가 삭발한 게 처음이라고 하는데, 저는 국정을 책임진 정부가 이렇게 엉터리로 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도 처음 (삭발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나라를 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나라를 몰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삭발 농성' 황교안 찾은 김병준 |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밤 11시께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와 15분가량 대화를 나누며 "잘 지내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며 "청와대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완전히 고장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황 대표 삭발 투쟁을 어떻게 봤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속이 참 답답하다. 오죽하면 저러겠나"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자정이 지난 0시 8분께 7시간에 걸친 청와대 농성을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조국 가족펀드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 장관의 5촌 조카 조모씨가 검찰에 구속됐다는 보도가 전해지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마무리 발언에서 "이것이 시작"이라며 "앞으로 계속되는 수사 과정에서 몸통이 밝혀질 것이고 결국 조국은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기국회를 조국 파면 관철 및 헌정농단 중지를 위한 정기국회로 반드시 이끌 것"이라며 "모든 것에 당당히 맞서 헌정농단을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제가 삭발의 작은 촛불을 들었다"며 "이 정부가 외쳤던 가짜 촛불이 아닌 진짜 촛불을 들고 싶다"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연좌농성장에서 일부 지지자들은 '빨갱이 잡는 황교안', '문재인 빨갱이', '민주당 해체' 등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청와대 앞에 모인 한국당 촛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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