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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추석연휴 직전… 정부, WTO에 '일본 수출규제' 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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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3대 필수 소재' 규제 관련… 화이트國 배제 조치는 포함 안해

WTO 결론 나려면 통상 3~4년, 실질적 효과 거두긴 어렵단 전망

중국 사드보복 땐 靑이 제소 말려… 정부대응 너무 차이난단 지적도

조선일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이 지난 7월 시행한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고 11일 밝혔다. 지난 7월 1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3대 필수 소재를 정조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 2개월여 만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규제는 일본 각료급 인사들의 언급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로 이뤄진 차별적인 조치"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WTO에 제소했다"고 말했다. WTO 제소로 일본의 추가 제재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WTO 협정 3개 조항 위반"

정부의 제소 근거는 3가지다. 먼저 일본 수출 규제가 WTO의 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회원국 간 최혜국 대우를 하기로 한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 수출량 할당 같은 수출 제한을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했고,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지난달 28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이번 제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조치로 인한 피해 상황이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국에 수출한 불화수소 등 군수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된 정황이 있다"며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해왔다. WTO는 안보상 불가피한 수출 규제는 예외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일본이 만약 WTO에서도 같은 주장을 편다면, 그런 사례가 없다는 반박 자료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양자 협의에서 먼저 일본 입장을 듣고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며 대화 여지를 남겼다. 이날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일본의 조치는 WTO 원칙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실효성 논란 속, 추석 직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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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실효성이다. WTO 제소는 최종 결론이 나려면 통상 3~4년이 걸린다. 더욱이 최근 미국이 상소위원 인선(人選)에 반대하며 상소기구를 무력화하고 있어 이번 제소는 기약 없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정원이 7명인 상소위원은 4명이 퇴임해 현재 3명만 남아 있고, 연말까지는 또 2명이 퇴임해 1명만 남게 돼 상소기구가 '식물기구'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 대응이 일본과 중국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는 노골적으로 진행돼 롯데·현대차 등 기업들이 실질적 피해를 보았고 당시 WTO 상소기구도 정상 작동하고 있어 충분히 WTO 제소를 할 만했지만 청와대가 나서 이를 말렸다. 그러나 이번 일본 규제는 아직 반도체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 등 피해 규모가 불분명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수입 지연 피해를 보고 있다"며 2개월 만에 제소했다.

일본이 맞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일본은 우리 정부가 일본 방사능 문제를 근거로 일부 품목 수출을 규제하는 움직임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맞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추석 연휴 직전 WTO 제소를 발표한 것을 두고 국내 정치를 고려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실무 준비가 완료됐기 때문에 지금 한 것"이라고 했지만, 재계와 야권에서는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 등이 명절 최대 이슈가 될 것을 우려해 '극일(克日) 정치'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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