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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국(曺國)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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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수와 진보 간의 사노맹 논쟁, 다시 한번 촛불을 들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외치던 대학가, 역사상 처음 보았던 8시간 넘는 셀프 청문회, 거대한 의혹의 서막처럼 보였던 사모펀드, 마지막 날 배우자 기소 등 커다란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마침내 장관이 되었다.

임명은 되었지만 의혹의 건수와 심도가 역대 어떤 청문회보다 많고 깊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앞으로 사법당국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사안이 많다. 무엇보다 시험 한 번 제대로 치르지 않고 유명 대학교를 옮겨 다닌 진학 과정이나, 성적이 좋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어졌어야 할 장학금을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딸이 받은 것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법무부 장관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한 법적 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을 넘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집단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강남좌파, 그리고 보통시민이 그것이다.

서울대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학문적·기능적으로 우수한 엘리트는 양성해 왔지만 도덕적·윤리적으로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엘리트를 배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조국 장관과 가족은 물론 각종 비리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사람 중에는 서울대 출신이 유독 많았다. 서울대 총장을 비롯한 교수진은 교육과정이나 교육방식, 심지어 교육철학에 문제는 없었는지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다음은 강남좌파다. 진보는 단어 그 자체로 긍정적 뉘앙스를 갖고 있다. 한자로 나아갈 진(進)에 걸음 보(步), 영어로도 progress와 같은 전향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 사회 많은 분들이 이 단어에 착시돼 진보가 주장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반면, 보수가 주장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학생운동을 통해 힘겹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친구들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진 강남좌파들이 무조건적으로 진보를 지지해왔다.

조국 청문회는 역설적으로 진보라는 단어가 주는 착시현상을 교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단어에 현혹돼 진영논리에 빠지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병리현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진보 중에도 (보수와 마찬가지로) 정의도 있고 불의도 있음을 이번에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극단화한 진영논리로 상대 진영은 무조건 욕하고, 자기 진영은 무조건 옹호하는 후진적인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 팩트를 찾아내고 성찰한 뒤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선진화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은 보통시민이다. '우리 안에 작은 조국'은 없었는지 성찰해봐야 한다.

조 장관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보통시민들은 그 정도로 크고 많은 불의를 모두 저지를 수는 없겠지만, 그중 한두 가지는 훨씬 작은 규모나마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진학을 위해 가짜 스펙을 만드는 데 부모가 힘 좀 쓰기로 뭐가 그리 문제가 되겠냐고 생각해 본 사람이 과연 조국 부부밖에 없을까?

역대급 태풍 링링이 남긴 피해보다 청문회가 남긴 상처가 더 크고 더 깊다. 인사청문회 제도라는 법적 제도를 사문화시키면서 법치주의를 흔들고, 진학 과정의 부정이라는 국민적 공분까지 전면적으로 무시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행위 앞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조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법적 심판을 지켜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대학교, 강남좌파, 그리고 보통시민 모두가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다. 사법 심판과 성찰, 두 가지 모두가 이행돼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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