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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권지예칼럼] 30년 후 노인 나라의 추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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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엔 한국 가장 늙은 나라 / 결혼한 부부들 아이 안 낳아 / 제사 문화도 자손들 줄며 도태 / 인구절벽시대 무슨 호강 누리랴

가을장마와 태풍으로 알곡과 과실이 익을 틈도 없이 며칠 후면 추석 명절이다. 결혼 후, 큰집인 시댁의 제사 때문에 막내며느리인 내게도 명절은 극기훈련을 하는 특별시기였다. 살인적인 귀성 전쟁을 치르며 각지에서 모인 30여 명의 식솔들의 음식과 조상의 제사음식을 며칠간 준비하던 살신성인의 추억이 내게는 있다.

시부모께서 다 돌아가신 후부터는 친정어머니가 오랜 기간 투병 중이라 맏딸인 내가 친정집 살림과 부모의 건강을 돌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올봄에 넘어져서 인공 고관절 수술까지 하고 거동이 불편하시니 내 삶의 질에 미치는 여파가 만만치 않다. 이래저래 심신에 무리가 됐는지, 여름 내내 나도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세계일보

권지예 소설가


80대 노부모를 봉양하는 자식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니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형국인데, 그나마 우리 부모 세대는 낫다. 내가 부모의 나이가 되면 나는 누가 돌보나. 이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건강에 경고등이 켜지는 노년의 어둡고 깊은 터널로 발을 들여놓기가 두렵다. 그런데 2045년이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전망이란다. 고령 인구 비중 급증률이 세계 평균율의 두 배를 기록해서 세계 최고가 된단다. 그런 것으로 1등을 먹다니. 앞으로 세계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길로 가게 된다니 암담하다. 이유는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 출산율이 1명도 안 돼 세계 최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5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리지만, 2067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절반이란다.

결혼해서 근처에 사는 내 딸은 틈날 때마다 내 건강을 걱정해준다. “엄마, 건강 잘 챙겨. 외갓집에 뭐 그렇게까지 해? 어휴, 난 앞으로 엄마한테 그렇게 못할 거 같아.” 딸한테 노년을 의지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듣기에 따라 좀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임기였던 때 가족계획 캠페인이란 게 있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에서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로 캠페인이 바뀔 무렵, 결혼해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딸을 낳았다. 다행히 딸은 열 아들 안 부럽게 잘 자라서 성실과 노력으로 좋은 직장을 잡고 자기가 원하는 짝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다만 3년이 지나도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진지하게 물어봤더니 아이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울 사회적 여건이 아니며, 자신이 애써 이룬 경력이 출산과 양육으로 단절되는 게 두렵고,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으며, 현재 부부가 아이 없이 좋은 생활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니 낳을 이유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삶에서 어떤 것도 양보하고 희생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도 딸의 인생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온갖 지원 정책에 골머리를 앓아왔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가장 근본적인 저출산의 원인이 25세 이상 35세 이하 가임기 여성의 45%가 결혼을 안 해서라는데, 결혼한 부부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니 더 큰 문제다.

한국에서 딸 하나 출산으로 애국했던 내가 6년 후 아들을 낳은 것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였다. 내가 유학 갔던 25년 전의 프랑스는 출산율이 거의 세계 최저였는데, 이민자든 외국인이든 미혼모든 동거 커플이든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혜택과 지원을 퍼부었다. 아이 덕에 한 달에 40만원의 현금 지원과 주거비 지원인 월세 할인, 그 비싼 의료보험 혜택을 전 가족이 받았다. 거의 무상으로 아이를 탁아소에서 맡아줘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미혼모든 비혼이든 외국인이든 아이를 낳는 모든 여성에게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정신, 그중에 박애의 품은 정말 넓었다. 그런 노력으로 현재 프랑스의 출산율은 평균 2명꼴로 유럽 최고가 됐다.

추석만 되면 제사다 성묘다 자손들이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느라 고생인데, 조만간 제사라는 문화는 대를 이을 자손이 줄어들 테니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인구절벽의 시대에 늙어 살아있는 것도 미안한데, 죽어서까지 무슨 호강을 누리랴. 30년 후 노인 나라의 추석이 문득 궁금해진다.

권지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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