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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방위비·유엔사 논란에 한미 동맹 균열론 ‘증폭’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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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의장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여년 동안 이어진 한미 동맹에 빨간불이 켜졌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과정에서 조금씩 누적됐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우리는 일본과 한국, 필리핀을 돕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주둔국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투입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 예산을 전용하면서 주둔국의 부담을 늘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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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병대원들이 상륙훈련 과정에서 해변가에 포진,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말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완전한 돈 낭비”라고 비판하면서 ‘한미 동맹 조정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이같은 기조는 현재의 한미 동맹 체제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될 우려를 안고 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미 동맹 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유엔군사령부의 역할과 맞물리면서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또다른 숙제다.

◆美 “‘동맹 이미지 메이킹’ 필요한가”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지난해부터 “돈이 많이 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6월 1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점에 가능한 한 빨리 (주한미군) 병력을 빼고 싶다”며 “우리는 많은 비용이 들고 있고, 한국이 (주둔 비용) 전액을 지불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보다 앞서 “훈련은 아주 비싸다. (훈련 중단으로) 많은 돈을 절약했고, 그건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인식은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조만간 개시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11차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최대 6조원의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10차 협상에서 작전지원 항목(전략자산 배치, 장비순환 배치, 연합훈련, 주한미군 역량 강화 비용) 신설을 요구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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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진 공군작전사령관(오른쪽)과 케네스 윌스바흐(왼쪽) 미 7공군사령관이 5일 공군 강릉기지에서 지휘비행을 실시하기 전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공군 제공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은 그동안 ‘강력한 한미 동맹’ 이미지를 대외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팀 스피릿 연합훈련에는 20만명의 병력이 동원됐으며,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11월에는 동해에 미 핵추진항공모함 3척이 집결해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이라기보다는 무력시위에 가까웠다.

이러한 무력시위는 비용 지출을 수반한다. 지난해 미국 CBS 보도에 따르면, B-1B의 한반도 1회 출동 비용은 13억5700여만원으로 추산됐다. B-2의 한반도 출격 비용은 17억3300여만원이었다. 핵항모와 강습상륙함의 한반도 1회 전개 비용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한반도 방위공약을 확고히 할수록 비용 부담도 늘어나는 구조가 현재 한미 동맹 구조다.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미군 주둔 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마이클 오헨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은 동맹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쇼의 상징이었지만, 예산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논의해 볼 만 하다”며 “대규모 훈련을 중단하거나 이를 복수의 소규모 훈련으로 나눠서 실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헨런 선임연구원은 주한미군 주둔의 경제성에 대해 “주둔국이 기지 건설비 등을 부담해도 병력의 해외 주둔과 무기 이동에 따르는 비용이 추가돼 미군을 국내에 두는 것과 해외에 주둔시키는 것의 비용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감안하면 연합훈련과 주한미군 주둔은 지역 안정 효과를 가져다주므로 결코 비싼 것이 아니며, 미군이 훈련을 하지 않은 채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예산 낭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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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에서 주한미군 에이태킴스(ATACMS)와 한국군 현무-2A 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현재 한미는 북한 비핵화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연합훈련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 논의도 진행중이다.

대규모 훈련 중단 기조가 장기화되고 연합훈련과 주한미군 주둔비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 미국 내에서도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수는 있겠지만 지역 내 안보협력체계 약화로 이어지면 의미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연합훈련 조정 당위성과 대안 등을 한미 양국이 세심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유엔사 역할, 전작권 전환 ‘숨은 불씨’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국 합참과 미래연합군사령부(現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나서게 된다. 이들 사령부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작권 전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지난달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 당시 유엔사의 역할과 정전협정 효력 문제가 불거진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유엔사다. 정전협정 관련 업무에 대해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의 지시에 응한다. 습격이나 침투 등 북한의 공격행위는 일차적으로 정전협정 위반사항으로 유엔사에 대한 도전이지만 유엔사는 전투력이 없으므로 한미연합사령관이 대응토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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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한측 경비병이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게티이미지


기존에는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 동일한 미군 4성 장군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 4성 장군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군사령부가 가동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평시에 유엔사가 정전협정 관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및 휴전선 일대에서의 한국군 교전수칙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군 내부에서 유엔사 활동범위 확대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는 것도 이같은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전면전 상황에선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한국측은 미래연합사령관과 합참의장, 미국측은 주한미군사령관(미래연합사 부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이 전면전 대응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남침이 정전협정 ‘파기’인지, ‘위반’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정전협정이 ‘파기’됐다고 가정하면 유엔사의 정전협정 관리 업무도 힘을 잃는다. 유엔사는 사령부 회원국들이 파견하는 병력과 장비를 미래연합사에 제공하는 ‘뒷일’만 맡는다.

반면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면 사정은 다르다. 위반이라는 개념은 원상회복의 필요성으로 연결된다. 정전협정을 복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제기된다. 정전협정 관리는 유엔사 권한이다. 미래연합사 부사령관을 겸하는 유엔군사령관이 상관인 미래연합사령관의 활동에 제약을 가할 여지가 생긴다.

북한 남침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미래연합사 부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이 분리되면 사정은 더욱 심각해진다.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 위반 대응을 미래연합사에 지시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전작권 행사가 빈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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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5일 서울안보대화 환영만찬에 참석해 건배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미국이 2014년부터 진행중인 유엔사 재구조화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미국은 유엔사 인력을 대폭 늘려 다국적 군사기구로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유엔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미군이 아닌 외국군 장성을 부사령관에 임명했다.

이를 두고 1978년 이후 사라진 작전기능을 되살려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개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기능이 강화된 유엔사가 한반도 유사시 전력제공국으로부터 받은 병력과 장비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확보하면, 정전협정 관리권과 함께 한국군의 전작권을 통제할 수 있는 또다른 힘을 갖게 된다. 미래연합사에 의한 단일 지휘체계가 아닌, 한국과 미국이 별도의 사령부를 두는 사실상의 병렬형 연합지휘구조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력시위에 치중한 연합훈련 비용과 주한미군 주둔비 논란,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의 역할 등은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계속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북한 도발 대응이라는 단기 과제 해결에 급급했을 뿐, 한미 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는 소홀했다.

한반도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동맹 관계에 변화를 시도하는 미국의 파상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양국 수뇌부 간의 정치적 협상과 합의가 필수다. 군 당국간 협의를 벗어나 정부 차원의 검토와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논란 수준에 머물던 한미동맹 균열론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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