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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생확대경]'묵시적 청탁'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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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국민간식으로 불리는 초코파이 CM송 가사 중 일부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의 국정농단 관련 상고심 선고에서는 이 가사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청탁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감지했다는 논리다.

◇대법, JY 묵시적 청탁 인정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에게 경영권 승계는 매우 중요한 현안 중 하나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기간이 길어지면서 실질적으로 이 부회장이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회장의 나이가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권 승계작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를 제외하더라도 기업 경영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현안이 존재한다.

특히 규제나 제도와 관련해서는 정부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각종 규제가 기업경영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경제단체나 정부와의 간담회 등을 통해 애로사항을 호소한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에많은 사회적 책임이행을 요청한다. 여느 정부를 막론하고 대·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측 인사들이 박 전 대통령이나 청와대에 직접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정부 도움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최순실 씨나 영재센터 등에 자금을 지원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뇌물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고, 그것을 바라고 박 전 대통령측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누구도 묵시적 청탁서 자유롭지 못해

특히 이런 논리라면 어느 기업도 묵시적 청탁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의 요청을 기업이 수용하면서 내심 현안 해결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정부의 요청을 들어준 기업에 모두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정경유착’도 어찌 보면 정부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과거 독재정권들이 각종 규제와 인허가를 무기로 기업들을 옥죄다 보니 기업들은 정부가 요청하면 거절할 수 없도록 길들여진 셈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부에 돈을 갖다 바치기 싫어 직접 대통령 선거에 나섰겠는가.

기업도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정경유착=만사형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전방위적인 로비로 이익을 얻으려했던 천민자본주의적 경영도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후 입장문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기업이 본연의 역할인 이윤창출을 통한 일자리 확대와 국가경쟁력 강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삼성도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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