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염전 35% 태양광 업자 손에…신안 천일염 위기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내 천일염 75% 생산되는 곳

업자 “빌려주면 소금 수익의 3배”

중앙일보

지난 20일 전남 신안군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이 수레에 담겨 있다. 전국 천일염의 75%가 생산되는 신안군 일대의 염전이 태양광 발전시설 업자들 손에 넘어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서 30년 가까이 천일염을 생산해온 김용희(66)씨는 내년부터는 소금 생산을 그만둬야 할 처지다. 염전을 빌려 천일염을 만들어 왔는데, 염전 주인이 염전을 태양광업자에게 임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염전 주인이 올해 연말까지 염전을 비우라고 해서 막막하다”며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천일염 생산지인 전남 신안군 염전 상당 부분이 태양광 시설로 바뀔 전망이다. 24일 신안군 천일염생산자협회에 따르면 신안군 염전(2800ha)의 35% 정도가 태양광 발전시설 업자에게 임대되거나 팔렸다. 이 가운데 10% 정도가 팔렸고, 25%는 염전주가 임대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안군에서는 전국 천일염의 75%(연간 30만t)가 생산된다. 신안군 천일염 생산 종사자는 97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염전을 빌려서 생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태양광 업자는 “염전은 일조량이 많아 태양광 발전을 해도 수익성이 충분하다”며 “소규모 태양광 업자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신안군 염전에서 태양광 발전에 눈독 들이고 있다”고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지도·임자도·신의도·도초도 등의 염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특히 신의도는 올해 들어 230여 개 염전(547㏊) 중 20% 정도가 임대차 계약을 마쳤다. 일부 염전주들은 임차인에게 보상금으로 300만원 정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태양광 시설로 바뀌면 염전을 빌려 소금을 생산해온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신안군 지도읍 일광염전에서 13년간 소금을 생산해온 이판도(67) 씨는 “내년에 태양광 시설이 들어오게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광염전의 22개 판(1판은 3∼5㏊) 가운데 17개가 임대차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중 13개가 태양광 시설로 전환될 예정이다.

염전주들이 태양광 업자에게 염전을 내놓는 것은 소금 생산 수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4㏊ 규모의 염전을 임대해 소금을 생산하면 임차인으로부터 통상 한 해 20㎏들이 6000가마를 받는다. 이를 천일염 도매가격(이달 평균 20㎏당 3000원)으로 환산하면 1800만 원이다. 지난 5월에는 천일염 가격이 폭락하자 신안군의 모든 염전이 15일간 생산을 멈추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20㎏당 2000원 수준이었던 천일염 도매가격은 지난 14일 현재 3400원까지 올랐다. 박형기 천일염 생산자협회 회장은 “소금값도 시원치 않은 데다 생산 인력도 고령자가 많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업자는 임차비를 4㏊당 연간 6000만 원씩 20년간 지급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20년이 지난 후 태양광 시설이 있던 곳을 염전으로 복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조성된 지 100년이 넘은 염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만 태양광 시설 임대계약을 했더라도 태양광 시설이 실제로 들어설지는 미지수다. 송전선로를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자 태양광 업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신안군 안좌, 팔금, 암태, 비금 등 9개 읍면과 내륙으로 전기를 연결하는 ‘변전소’ 용량이 130MW에 불과한데 태양광 발전 접수 용량만 291MW다. 2023년 암태도에 100MW 규모 변전소를 추가 설치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내다 팔 ‘전선’도 부족한데 해상철탑 설치비용은 20억원, 해저케이블은 1㎞에 60억원이 필요하다.

신안=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