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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고 사랑한 여자, 뜨겁도록 당당한 '옹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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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점 찍고 옹녀' 뮤즈 이소연, 젊은피 유태평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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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이소연-유태평양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이소연(왼쪽)과 유태평양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8.24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가다 하고 오다 하고 자다 깨다 하고 울다 웃다 하고 화내다 하고, 앉어 하고 서서 하고 무단히 하고 졸다 번뜻 하고 심지어 나무에 매달려서도 하니 이를 장차 어찌하오리까?"

지리산 자락을 지키는 함양 장승의 푸념이 심상찮다. 무엇을 '했다'는 건지 넘겨짚어 보니, 누가 장승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금슬을 뽐낸 듯싶다.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 '변강쇠'와 '옹녀' 소행이렷다.

국립창극단의 인기 레퍼토리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새로운 에너지로 재충전하고 돌아왔다. 2014년 첫선을 보인 이 작품 원작은 조선 후기 판소리 '변강쇠전'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서로의 성기를 묘사한 '기물가(己物歌)' 등이 음란물로 치부되며 가사만 남고 소리가 사라졌다. 한승석 음악감독이 새로 작창하고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매만져 요염한 창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22일 종로구 수송동에서 국립창극단 소속 국악인 이소연(35)과 유태평양(27)을 만나 조선을 뒤흔든 뜨거운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옹녀는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평범치 않은 여자"

극은 변강쇠의 말초적인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라는 제목도 변강쇠에게만 맞춰져 있던 시선에 종말을 고하고 옹녀로 초점을 옮겼음을 뜻한다.

작품은 옹녀의 기구한 팔자를 들려주며 출발한다. 평안도 월경촌의 마음 곱고 인물 고운 옹녀는 사주에 청상과부 살이 겹겹이라, 결혼만 하면 첫날밤에 서방이 죽어 나간다. 심지어 과부 옹녀를 범하려는 수많은 남자 역시 급사한다. 마을에 총각이 남아나지 않자 촌장은 그녀를 쫓아낸다.

서럽게 남녘으로 가는 길에 운명처럼 변강쇠가 나타난다. 어째 궁합 풀이를 해보니 기가 막히게 맞는다. 거사를 치렀는데도 변강쇠가 죽지 않자 옹녀는 마냥 기쁘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도박과 술로 다 써버려도 미워할 수가 없다.

2014년 첫 공연부터 매년 옹녀 역을 맡은 이소연은 처음에는 옹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서방이 계속 죽어 나가는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만물의 욕구잖아요. 처음에는 '이러고도 또 남자를 만난다고?' 싶어서 답답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겠더군요. 옹녀는 평범하게 백년해로하고 싶었던, 평범치 않은 기구한 운명의 여자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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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이소연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국립창극단 소속 국악인 이소연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8.24 jin90@yna.co.kr



이소연은 2015년 두 번째 시즌 공연을 마치고 결혼했다. 이후 옹녀의 선택에 공감할 수 있었다.

"도박하러 가는 변강쇠를 보고 '그래도 좋네. 저기 가는 사내 뒤태가 나는 좋아' 하는 대목이 있어요. 저렇게 미운 짓을 하는데 그래도 좋을까 싶었죠. 그런데 어른들이 결혼하고 나면 소리꾼으로서 깊이가 달라질 거라고 한 말씀이 맞더군요. 부부라는 게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거구나, 어떻게 해도 내 곁의 내 사람이구나 마음으로 알게 됐지요."

옹녀와 변강쇠의 사랑도 위기를 맞는다. 변강쇠가 지리산 장승을 뽑아다 불을 때며 '동티'가 난 것. 전국 장승들은 분기탱천해 그에게 세상 만병을 주고, 변강쇠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원작 판소리와 달라지는 건 이 시점부터다. 판소리에서 옹녀는 비극적 결말을 맞지만, 창극에서는 변강쇠를 돌려달라며 장승들과 맞서 싸운다. 이소연은 "기구한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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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우아한 미소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국립창극단 소속 국악인 이소연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8.24 jin90@yna.co.kr



◇ "변강쇠는 조선판 욜로족…20대가 보면 더 재미있을걸요"

유태평양은 올해 처음으로 변강쇠 역을 맡았다. 그가 해석한 변강쇠는 조선 시대 욜로족(You Only Live Once·인생은 단 한 번)이다.

"변강쇠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세상을 떠돌아요. 저도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는 변강쇠를 그저 색(色)을 밝히는 인물로만 치부했지만, 어쩌면 항상 외로웠던 사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유년 시절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내부에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이 있지 않았을까요. '몸도 마음도 떠돌았지만, 옹녀를 만나 정착했다'는 대사에서 그걸 확신했어요. 옹녀를 만나면서 욜로족에서 해방된 거죠."

1992년생인 그에게 고달픈 인생사와 질펀한 성적 코드를 녹여낸 작품을 소화하기 다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자 단박에 "아니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웃음) 작품 할 때면 첫사랑에게 배신당했을 때 느낌이라던가, 제 삶에서 끄집어낸 여러 경험이 도움이 되는걸요."

유태평양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야말로 국악을 낯설어하는 또래 20대들이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서양식 뮤지컬 무대와 다른 한국적 흥, '18세 이상 관람가'인 만큼 차진 우리말의 맛이 있다는 것이다.

"고전을 유쾌하고 기발하게 재해석한, 성적인 묘사를 저급하지 않게 예술적으로 해낸 작품이에요. 저도 '18세 이상' 관람가라고 해서 낯부끄럽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두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모두가 한바탕 웃고 갈 수 있죠. 특히 대사를 잘 들어보시면 좋겠어요. 처음엔 그저 웃기다가도 애잔한 슬픔이 있거든요. 해학이 이런 거구나 싶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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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평양, 여유로운 미소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국립창극단 소속 국악인 유태평양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8.24 jin90@yna.co.kr



◇ "창극과 우리 소리에 관심 이어지길"

이소연은 전남대에서 국악을 전공하던 2003년, 잠깐의 '외도'를 한다. 소리를 접고 전문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한 것이다. 2년 가까이 연극을 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 그는 판소리로 돌아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새로 입학한다.

"소리에 대한 권태기랄까요. 평생 소리를 해놓고도 왜 소리를 해야 하는지 모르던 시절이 있었어요. 무작정 연극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제가 무대에 설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다는 걸 알았죠. 돌이켜 보면 그때 경험이 지금 창극을 하는 자양분이 됐어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성음이 태어났고, 성음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훈련한다는 걸 스스로 납득했어요. 더 많은 분이 창극과 우리 소리를 즐기시도록 제가 더 무르익은 소리꾼이 되어야겠지요."

유태평양은 '판소리계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자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낮췄다. 실제로 그의 무대가 있는 날은 팬들이 '회전문 관람'을 하거나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와 출퇴근길을 촬영하는 일이 잦다. K팝 아이돌 주변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1970∼1980년대 판소리계에는 어마어마한 팬층이 있었대요. SNS가 없던 시절인데도 체감할 정도였다고 해요. 문화가 돌고 돌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고, 요즘 국악 쪽으로 조금씩 관심이 돌아오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저는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항상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혹시나 저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가 있다면 저를 밟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처럼 돼야지' 하면 딱 목표가 거기까지인 거니까요. 물론 후배들이 열심히 할 때 저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지만요. (웃음)"

공연은 오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이어진다. 관람료는 2만∼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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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점 찍고 옹녀' 이소연-유태평양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이소연(왼쪽)과 유태평양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8.24 ji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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