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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우린 뭘 먹고살라고"… 하천 위 방갈로 '배짱 장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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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불법점유' 근절, 한 달도 안됐는데… 올해도 '공염불' 비판 목소리 / 경기도청 관계자 "많은 기관과 협조해야해 시간 걸려"

세계일보

“여기 가격 다 거기서 거기야. 위에 가봐야 볼 것도 없어.”

지난 20일 경기도 포천시 백운계곡 중간 지점의 한 음식점 앞에서 한 업주가 손님들의 손목을 잡아끌며 호객행위에 한창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계곡 곳곳에서 기승인 ‘하천불법점유 영업행위’를 근절하라고 특별지시한 지 채 한 달도 흐르지 않았건만, 물길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음식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여름 휴가철마다 ‘피서지 바가지 요금’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당국이 늘 뒷북만 울려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세다. 성수기가 다 지나서야 형식적인 단속과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불법 근절 약속’은 해마다 공염불에 그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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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불법 시설물 설치하고 개발제한 구역서 무단 영업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이하 특사경)은 지난 1일, 포천 백운계곡, 양주 장흥 유원지 등 도내 주요 16개 계곡 등을 대상으로 7월8일부터 19일까지 불법행위를 수사한 결과 74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 음식점은 계곡에 불법으로 평상이나 천막을 설치해 손님을 받거나 영업행위가 금지된 개발제한구역에서 무단으로 영업을 해왔다. 불법으로 보를 설치해 계곡 물의 흐름을 늦춘 곳도 있었다. 도 특사경은 이들을 모두 형사입건하고, 관할 시군에 통보해 원상복구 등의 행정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엔 이재명 경기지사가 확대간부회의에서 불법점유 영업행위에 대해 철거, 비용징수, 가압류, 감사, 수사의뢰 등의 방법을 총동원해 불법행위를 원천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 지사는 “불법을 잘하는 게 능력이 된 것 같다. 법을 마구 어겨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힘센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며 “합의한 규칙이 지켜지는 세상이 돼야만 선량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만큼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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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기준 자릿세만 10만원… “3시간 물놀이에 수십만원 우스워”

하지만 연례행사처럼 이뤄진 ‘반짝 단속’을 비웃듯 계곡 주변 음식점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백운계곡은 상류부터 물줄기를 타고 음식점이 빽빽했다. 물가 바위 위에는 평상과 그늘막으로 만든 소위 ‘방가로’가 촘촘히 깔려있어 피서객이 스스로 가져온 텐트나 돗자리 하나 펼 자리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도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도 음식점을 통하지 않고는 어려울 정도였다. 계곡은 국유지이건만 이를 이용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점에 돈을 내야 수월한 구조였다.

여름 휴가철 끝물이었음에도 호객 행위는 쉴 새 없었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자릿세는 4인 가족 기준 10만원, 2인 기준 5만원선. 이 또한 평일·주말인지, 손님이 몇 명인지, 단골인지 여부에 따라 ‘사장 마음’대로 줄었다 늘었다 했다. 물론 음식값은 따로였다. 자릿세에 음식값까지 합하면 반나절 물놀이에 수십만원은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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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을 취소하고 가족 나들이로 주말 백운계곡을 찾았다는 두 아이의 엄마 김모(39)씨는 “4인 기준 자릿세 10만원에 음식값 15만원으로 총 25만원이 들었다. 수도권 계곡에 놀러와 3시간 논 것치고 너무 비싼 값을 치른 것 같다”며 “아이들이 눈치 안 보고 즐겁게 놀아 다행이었지만 물놀이에 일본여행 2인 항공료를 썼다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고 털어놨다.

자릿세를 받지 않는 일부 음식점은 음식값을 비싸게 부르기도 했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집은 음식을 시키면 자릿세가 없다”고 강조하며 A음식점 사장이 건넨 메뉴판에는 한방백숙이 7만원, 닭볶음탕 7만원, 도토리묵 2만원 등이 적혀있었다. 자릿세를 받는 타 음식점보다 5000원∼1만5000원 비싼 가격이다. 물론 도토리묵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을 시키면 추가 자릿세를 내 최저 금액을 5만원 정도로 맞춰야 했다. “음식을 안 시키면 자릿세가 얼마냐”고 사장에게 묻자 “방가로만 대여하면 5만원이다. 그렇게 대여료를 내느니 음식을 시키고 추가금을 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꼬드겼다.

◆음식점 “우리가 계곡 관리해줘” 배짱 장사

계곡 불법 무단 점용 등 하천법 위반행위는 최고 징역 2년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미신고 불법 음식점을 운영할 경우에는 최고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엄연한 국유지를 사유지화한 음식점들의 불법행위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한 음식점 주인은 “이곳에서 장사한 지 30년이 넘었다. 여름 한 철 장사하는데 그것마저 단속하고 막아버리면 우린 뭘 먹고 살라는 건가”라며 “자릿세는 우리가 여기 계곡 관리하는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계곡 근처에서 취사를 허용하는 음식점들이 환경을 더럽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인과 얼마 전 경기 연천 동막계곡을 찾았다는 직장인 박모(34)씨는 “계곡물 가까이에 취사가 가능한 평상들이 있다 보니 그 근처에 삼겹살 기름, 상추 같은 게 다 떨어져 있었다”며 “지금 음식점들이 너무 난립해 있는데 지자체가 나서서 환경보호를 위해 취사를 제한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단속 공무원과 음식점 유착관계 의심도… 이 지사 "유착 의심되면 수사 의뢰할 것"

시민들의 불만과 별개로 불법 음식점 철거 대신 과태료나 벌금으로 명분뿐인 단속만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서 단속기관과 음식점들 사이의 유착관계를 의심할 정도다. 이재명 지사는 “시군과 협력해 계곡 전수조사를 하고 지적했는데도 계속할 경우 각 시군 담당공무원을 직무유기로 감사하고 계속 반복되면 유착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런 부분은 수사의뢰하도록 하겠다”며 “이 문제와 관련한 특별TF팀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경기도청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대책을 수립 중”이라며 “실질적으로 집행 기관이 각 시군인데 많은 기관과 협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 측은 지난 23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양주 계곡 일대 불법음식점 철거 현장을 방문해 업주들과 대안 도출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알려왔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철거현장을 직접 보니 안타까움도 든다. 법이나 사회질서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찾아가자”며 “옳지 못한 관행과 편법이 일시적으로는 이익 같지만, 결국 관광객 규모를 줄이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멀리 보면 손해다. 잠깐의 불편과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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