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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 순간] 가난이 불탄 뒤…수북히 남은 ‘1㎏당 650원’ 병뚜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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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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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여인숙 가난 위에 덮친 화마 지난 19일 새벽 전북 전주의 낡은 여인숙에서 불길이 치솟아 폐지를 주워 월세방에 살던 70~80대 노인 3명이 숨졌다.

 1972년에 개업한 이 여인숙은 2평도 채 안 되는 고시원보다도 좁은 쪽방 11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화재현장 한쪽에 옷가지 사이로 비닐봉지에 가득한 음료수병 뚜껑(사진)이 놓여있었다. 1㎏당 신문은 70원, 파지는 40원인 것에 비해서 병뚜껑과 캔, 양은 등은 650원 정도 받을 수 있는 고철이다. 얼마나 모아서 팔려고, 그 돈은 어디에다 쓰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병뚜껑 하나하나를 주워서 모은 노인의 심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화재로 숨진 83살 김아무개 씨와 76살 태아무개 씨, 72살 손아무개 씨의 세 사람은 폐지나 고철 등을 주워 내다판 돈으로 월세 12만원을 내며 근근이 생활해왔다. 노인들은 단층 건물인데도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름은 여인숙이지만 사실상 가난한 홀몸노인들이 사는 비좁은 쪽방촌이었다. 여인숙 간판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전화번호조차 읽을 수 없었다. 화재현장을 찾은 21일 오후 아직도 화마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좁은 방은 성인이 바로 누울 수 없고 대각선으로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쪽방이었다. 11개 좁은 방 어디에도 에어컨은커녕 냉장고도 보이질 않았다. 방 안엔 타다 남은 선풍기 날개 철망만 조금 남았을 뿐이었다. 말복도 지났지만 한낮의 더위는 폭염이어서 화재현장을 잠시 둘러보는데도 등에 땀이 흐를 정도인데, 여인숙 쪽방에서 지내셨던 어르신들은 선풍기와 손부채로 여름을 겨우 버티고 살았던 모양이다. 고철과 폐지를 모아서 월세방에서 생활하던 노인들은 나중에 좋은 날 신으려고 했던 검정 구두 , 하얀 구두, 뾰족구두들이 화재현장 앞마당에 한 것 멋 부린 핸드백과 밥그릇이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화재현장 주변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한 중년은 “이번에 돌아가신 한 분은 폐지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평소 부지런하시고 동네 거리에 꽁초나 휴지 등 쓰레기를 치워주어서 항상 동네 거리가 깨끗했는데 이번 화재로 유명을 달리하셔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노인들이 쪽방에서 가난과 빈곤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전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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