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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뒤 여론 바뀔 수도”…양승태·임종헌 시간끌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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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

⑩ 사법농단 재판 6개월

양승태 구속기소된 지 6개월 지나

첫 재판 여는 데만 3개월 걸려

증거 문건 검증에 또 시간 소요

증인 판사들 두번 중 한번 안 나와

212명 증인 중 신문 완료 10명 그쳐

이재용 재판은 증인 20%만 불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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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신문 예정이었던 증인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날 증인신문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 드립니다.”(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시진국 증인이 ‘해당 날짜에 본인이 당직 법관으로 지정돼서 출석이 어렵다. 그래서 7월26일 이후로 증인신문 날짜를 잡아달라’고 하는데요, 그 불출석 사유가 정당한지 의문입니다.”(검찰)

지난 7월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에 시진국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현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의 증인신문 불출석 사유서가 접수됐다. 사유는 증인신문이 예정된 날 당직 법관으로 일하게 됐다는 것. 일선 법원에서는 당직 법관을 지정해 근무시간 외 재판 업무를 처리하게 한다. 시 전 심의관은 6월26일 재판에도 “현재 맡고 있는 재판 때문에 출석이 어렵다”며 한차례 불출석했다. 이번엔 ‘당직’을 이유로 다시 불출석 사유서가 제출되자 검찰은 반발했다. 이튿날인 3일 재판에서 검찰은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의 발언이 끝나자 마이크를 잡았다.

검찰은 대법원 규칙인 ‘법원 당직 규칙’을 근거로 들며 시 전 심의관이 동료 법관과 당직을 바꿔 출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원 당직 규칙을 보면, 당직 지정을 받은 법관이 출장이나 휴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당직근무를 하지 못할 때는 당직 변경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는데,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은 출장, 휴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증인들의 재판 기일, 재판 준비에 필요한 기간, 당직근무까지 고려해서 기일을 지정해야 한다면 재판이 한없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이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검찰은 시 전 심의관의 불출석 사유가 정당한지 재판부에 판단을 구했다. 재판부는 시 전 심의관이 출석했어야 할 7월5일 재판에서 그 답을 내놨다. “오늘 신문하기로 예정했던 증인이 출석을 못 했는데요. 출석을 하지 못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봐서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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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 당직근무…판사들의 불출석 사유들

지난 11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기소(2월11일)된 지 6개월 되는 날이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피고인석에 세운 ‘세기의 재판’이 시작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재판은 좀처럼 속도를 내질 못하고 있다. 5차례의 공판 준비 기일을 거쳐 첫 정식 재판(5월29일)을 여는 데만 구속기간의 절반이 지나갔고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을 검증하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이에 더해 증인으로 소환된 전·현직 판사들이 본인이 맡은 재판, 당직근무 등을 이유로 불출석해 증인신문도 공전 중이다. 그사이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기간(6개월) 만료를 앞두고 지난달 22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불구속 피고인이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재판에 서야 할 증인은 적어도 212명(16일 기준)이다. 이 가운데 16일까지 증인신문이 완료된 전·현직 법관, 외교부 관계자는 10명뿐이다. 검찰은 “증인신문 진행 상황에 비춰봤을 때 재판이 5~7% 정도 진행됐다”고 설명한다.

지난 재판 기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 6개월 동안 재판부는 정식 재판을 24차례 열었다. 첫 증인을 법정에 세우는 것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 4명이 5차례에 걸쳐 소환에 불응했다.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불출석 사유를 전해왔다. 출석일로부터 1∼2주일 전에 소환장을 우편으로 송달받은 이들은 “증인신문 기일 다음날과 그다음 날 재판이 있어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한다”(정다주), “재판 일정과 중복돼 출석이 어렵다”(박상언)고 설명했다.

전직 대법원장 재판에 선 ‘첫 증인’이라는 타이틀을 서로에게 미루는 모양새였다. 결국 첫 증인신문이 이뤄지는 데 20여일이 걸렸다. 그 뒤 시진국, 박상언 전 심의관은 3차례 소환 끝에 겨우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16일까지 증인 13명을 21차례에 걸쳐 법정에 소환했지만 불출석 사유서가 10차례 제출됐다. 두번 소환하면 한번은 안 나온 셈이다. 첫 소환에 출석한 증인은 5명에 그쳤다.

증인신문이 예정대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검찰 쪽은 마땅한 대책을 세워달라고 재판부에 거듭 요청했다. 증인신문이 예정된 이들에 대해선 두세달 앞서 일괄적으로 증인신문 기일을 지정해 통보하거나, 우편으로 증인소환장을 보내는 것에 더해 전화나 이메일로도 증인신문 일정을 공지해달라는 취지였다. 검찰 쪽은 “첫번째 소환에 응해 출석하는 증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견을 참고해서 필요하면 그렇게 하겠다”던 재판부는 16일 “(첫 소환에 증인이 불출석하는) 그런 경우가 더 다수인 것 같진 않다”면서도 “증인 출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첫번째 증인소환장을 송달하는 동시에 핸드폰 문자도 전송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국정농단 재판과 비교하면, 사법농단 재판이 얼마나 지지부진한지 차이가 명확하게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된 2017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1심 재판 기록을 살펴보자.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과 같이 이 부회장 쪽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증인신문이 줄줄이 예정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진행 과정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보통 구속 피고인에 대한 선고는 구속기간 만료 전에 이뤄진다. 그해 4월7일 첫 정식 재판이 열렸다. 구속기소(2월28일)된 지 한달여 만이었다. 열번째 재판부터 본격적인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당시 재판 기록을 분석해보면, 재판부는 중복 출석 요구를 포함해 모두 77차례 증인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그중 증인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17차례뿐이었다. 재판부가 다섯번 증인을 소환하면 한번 정도 출석에 불응한 셈이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던 당시 재판부는 재판 진행에 속도를 붙였다. 빈틈없이 진행된 재판은 6개월여 만인 8월25일 1심 선고로 일단 막을 내렸다. 이 부회장의 구속기간 만료(8월27일)를 이틀 앞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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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더 늦게 선고 나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도 전·현직 판사 증인 소환에 애를 먹었다. 전지원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현 대전고법 부장판사)은 “증인신문 기일에 소속 법원 체육대회가 예정돼 있다”는 이유로 출석에 불응했다. 담당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정당한 불출석 사유가 아니’라고 보고, 전 전 총괄심의관에게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했다. 형사소송법(151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돼 있다. 전 전 총괄심의관이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가 법정에 나온 지난 5월27일 과태료 재판이 열렸다. 결국 전 전 총괄심의관이 법정에 출석한 점 등이 고려돼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았다.

이날의 풍경은 추후 임 전 차장이 윤 부장판사에 관해 법원에 낸 기피 사유서의 한 대목으로 인용됐다. 임 전 차장은 윤 부장판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법원체육대회는 판사와 직원 누구나 참석해야 할 법원 전체 행사로, 불출석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윤 부장판사가 전 전 심의관을 “자리에서 일어서게까지 하며, 그 이유까지 낭독해가며” 과태료 재판을 연 점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낸 기피신청은 지난달 8일 기각 결정이 났지만 임 전 차장이 불복하면서 서울고법에 올라간 상태다. 기피신청을 내면 재판이 일시 중단되는데 그 기간은 구속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 그 불이익까지 감수하면서 재판을 지연하는 이유에 관해 법조계 일각에선 “사법농단 1호 선고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금 재판의 화두는 ‘시간끌기’다. 홀로 다 뒤집어쓸 수 없는 임 전 차장 입장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보다 먼저 선고가 나면 불리하다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쪽 상황도 다르지 않다. 증인신문이 미뤄져 재판이 공전될수록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쪽은 “판사들이 재판 날짜를 잡는 게 한달, 두달 전이다. 그것도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불출석 증인 쪽 주장을 거든 바 있다. 한 판사는 “‘사법농단’ 사건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질수록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여론의 향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좋다”고 짚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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