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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1975년 덕적도 방위병 총기난사 재조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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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소리도 하지 말라. 조용히 있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44년전 ㄱ씨의 유가족들은 인천 월미도에 있는 부대 밖으로 죄를 지은 것처럼 쫓겨나야했다. 서슬 퍼랬던 군사정권 시절. 방위병의 총기난사로 졸지에 부모를 잃은 자식들이 안타까워 친척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려 군부대를 찾았지만, 돌아온 건 협박뿐이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4남1녀의 어린 자녀들은 덕적도와 인천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식모살이를 하거나 친척집 등에 얹혀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고 학교는 초등학교밖에 못다녔다. 군은 숨진 부모의 장례 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에 대해서도 어떠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당시는 군, 경찰에 대해 불리한 언급을 하면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이 많던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수십년간 소송이나 배상 등 어떠한 요구도 생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43년 동안 이들은 억울함과 한을 가슴 속에 품고살다, 지난해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보상을 요구하는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20일 “1975년 인천 옹진군 덕적도 근무 방위병이 민간인에게 총을 난사해 2명이 숨지고 자살한 사건에 대해, 당시 총기 관리 부실 등 사건에 대한 제대로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진상규명을 위해 재조사 또는 재수사를 할 것을 국방부에 의견표명을 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해군 등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당시 제5해역사령부(현 인천해역방어사령부) 헌병대장이 작성한 ‘자살사건 통보서’ 외에 관련 문서는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권익위 자료를 보면, 당시 사건은 군의 부실한 총기관리에서 시작됐다. 1975년 5월29일 덕적도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ㄴ씨는 저녁에 무기고에서 엠원(M1) 소총 1정과 실탄 8발을 훔쳤다. 그는 짝사랑하던 ㄷ씨의 아버지 ㄱ씨 등이 결혼을 반대하자 불만을 품고, 새벽에 ㄷ씨 집에 침입했다. 그는 ㄷ씨의 가족에게 총을 쏴 아버지와 어머니를 숨지게 하고, ㄷ씨의 동생 ㄹ씨에게도 복부관통상을 입혔다. ㄴ씨는 짝사랑하던 ㄷ씨에게도 2발을 쐈지만 빗나간 뒤 ㄴ씨는 주변 주택에 들어가 자살을 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당시 해군 헌병대는 ㄴ씨가 자살하자 불기소의견으로 군검찰에 송치하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권익위는 밝혔다. 당시 이 사건은 언론에도 전혀 보도되지 않고 서해 외딴 섬에서 조용히 덮어졌다. 복부관통상을 입고 15일간의 병원 치료끝에 겨우 회복을 한 ㄹ씨는 장폐색증 등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이를 숨긴채 살아가야했다.

권익위는 “부실한 총기 및 실탄 관리 감독이 사건 발생의 원인인데도 이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이 사건으로 평온했던 신청인 가족의 삶이 파괴됐고 그 피해는 현재도 진행형인 점, 사건발생 지역이 최전방에 위치해 있고, 군부대의 협박 등 피해자가 국가에게 손해배상 등 권리구제를 요구하는데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사건을 재조사 또는 재수사하고 피해구제방안을 검토할 것을 국방부에 의견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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