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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 필요 없어요, AR 안경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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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업자가 수백 개의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진 배선반(配線盤)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있다. 미국 항공기업체 보잉의 최신 여객기 737-900ER에 들어가는 전기 장치다. 설계도도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거침없이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은 작업자가 쓴 AR(증강현실) 안경 덕분. 보잉 관계자는 "AR 안경을 통해 눈앞에 자동으로 배선 위치가 표시되기 때문에 안내에 따라 바로 조립하면 된다"며 "설계도를 펼쳐놓고 작업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조립 시간이 25%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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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래 이야기만 같았던 AR 기술의 적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넘어서, 공장과 쇼핑몰 등 비즈니스 현장에 널리 확산하며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과 접목한 기업 마케팅에도 AR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곳곳에 쓰이는 AR

AR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가상의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다. 안경처럼 쓰는 헤드셋이나 스마트폰 등 IT(정보기술) 기기를 통해 볼 수 있다. 실제 지도와 위치 정보를 게임 콘텐츠와 결합한 '포켓몬' 게임이 대표적 사례다.

AR 기술은 최근 제조업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보잉은 AR 기술을 이용해 전체 항공기 제작 공정의 생산성을 40%가량 끌어올리고, 불량률은 수백분의 1로 떨어뜨렸다. GE는 풍력 발전기 제조 라인에 AR 헤드셋을 도입, 작업 속도를 34% 끌어올렸다. AR 기술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도 활용된다. 포드는 미국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협업할 수 있는 '가상 작업장'을 만드는 데 AR 기술을 적용했다. AR 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펼쳐진 자동차 위에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보인다.

국내에서는 KT가 산업용 AR 안경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AR 기술을 이용하면 복잡한 작업을 더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면서 "작업 시간은 줄고 정확도는 높아지면서 전체 인건비를 줄이는 데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업체들도 AR 도입에 적극적이다. 가구업체 이케아한샘이 집안에 가구를 가상으로 놓아볼 수 있는 앱을 내놨고, 롯데쇼핑은 서울 소공동 본점 지하에 화면에서 옷을 고르면 이 옷을 자기 몸에 가상으로 걸쳐볼 수 있는 디지털 거울을 선보였다. 또 현대백화점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을 고르면 이 제품을 바른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AR 메이크업 서비스를, 이스트소프트는 수백 가지의 안경을 골라 가상으로 써볼 수 있는 AR 피팅(착용) 앱 '라운즈'를 내놨다.

◇AR 미술관과 동물원도 등장

응용 범위가 넓어지자 AR 시장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 컨설턴시에 따르면, 2016년 40억달러(4조8000억원)에 불과했던 AR 시장의 규모가 2022년 1610억달러(195조원)로 6년 만에 40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AR은 새 마케팅 기법으로도 주목받는다. 미국 애플은 AR을 이용한 '[AR]T' 앱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앱을 설치한 아이폰으로 뉴욕 하늘을 비춰보면 하늘 위로 하얀색 글자로 된 한 편의 시(詩)가 나타나고, 마천루 사이로 알록달록한 선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욕 '뉴뮤지엄'에 전시된 신진 작가들 작품을 AR 기술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애플은 최근 AR 안경 개발에도 나섰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AR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필적할 정도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국내 기업들도 비슷한 시도에 나섰다. 역사 내 스크린도어와 기둥 등을 앱으로 비추면 스마트폰 화면에 움직이는 미술 작품이 나타난다. SK텔레콤은 13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과 여의도공원에 'AR 동물원'을 열었다. 앱을 통해 레서판다와 웰시코기 같은 동물이 공원을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서울 지하철 공덕역에 'AR 갤러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 7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10 언팩' 행사에서는 'AR두들'이 큰 관심을 받았다.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면서 그 위에 S펜으로 그림을 그려 AR 콘텐츠를 만드는 기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으로 VR(가상현실)과 AR이 접목된 MR(혼합 현실) 헤드셋 '오디세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유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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