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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일본인들의 8ㆍ15 조선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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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1945년 10월 어선을 이용해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항구로 귀환하는 모습. 미 국립문서기록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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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8ㆍ15 항복 발표 이튿날 조선총독부는 부산지방교통국에 중대 지침을 하달한다. 즉시 일본으로 출항할 선박을 마련하라는 것. 8월 17일 승선할 일행이 비밀리에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부인이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출항한 배는 얼마 못 가 멈춰 서더니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총독 부인이 조선에서 수집한 귀중품을 과적한 때문이었다. 일행은 짐을 절반 넘게 버리고 나서야 겨우 부산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앞다퉈 재산을 일본으로 반출하는데 광분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공식 송환선이 아닌 밀항선을 빌려 가산을 잔뜩 싣고 돌아갔다. 일본인 자본가들은 재고품과 원료를 일본으로 빼돌렸고, 심지어 자신의 공장 시설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군은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무기와 탄약을 파괴했고 식량과 일용품까지 불사르거나 바다에 던졌다. 조선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극심한 인플레로 혼란을 겪었고 서민들은 물자 부족으로 내핍에 시달렸다.

□ 남한에 남아 있던 일본의 자산은 1952년 한일청구권 회담 때 역(逆)청구권 주장에 동원됐다. 일본은 한국의 대일 청구권 요구에 맞서 일본이 남겨 놓은 재산이 더 많다고 강변하면서 양측 모두 청구권을 포기하자고 회유했다. 이미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미 군정의 재한 일본인 재산 몰수가 결정됐는데도 딴소리를 했다. 결국 일본의 집요한 주장으로 한일협상에서 청구권 문제는 희석되고 경제논리에 기초한 정치 담판으로 변질됐다.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든 것이다.

□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은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서 “애초 한국은 청구할 게 별로 없었고, 22억달러어치의 재한국 일본인 재산을 이미 취득한 점을 고려하면 최선의 합의였다”고 주장했다.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 수석대표가 “일본 측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일본은 36년간 민둥산을 푸르게 만들었고, 철도를 깔았고, 수전(水田)을 늘리는 등 많은 은혜를 한국인에게 베풀었다”고 한 망언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이 발언을 문제 삼아 4년6개월간 회담을 중단시켰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국부’라 칭송했던 이 전 대통령이 책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