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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지일파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에 듣는 `한일 갈등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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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대영 금융부장

매일경제

안경수 네오랩컨버전스 회장이 최근 서울 구로구 마리오타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면서 중소기업이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제공하는 히든 챔피언 모델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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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마주오는 기차처럼 충돌 직전이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하고 최근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한•일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매일경제신문은 서울 구로구 마리오타워에 있는 네오랩컨버전스 본사에서 안 회장을 만나 한일관계 해법을 들어봤다. 안경수 회장은 한국 산업계 CEO가운데 일본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한국후지쯔와 소니코리아 등 일본기업 한국법인 회장을 역임한 것은 물론 한국인으로 처음 후지쯔 본사 경영집행역에 올랐고 소니에서도 본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그만큼 양국의 기업문화를 잘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일 갈등의 실마리를 풀 방법은.

▶ 이번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역사적 갈등을 겪은 이웃국가라는 점이다. 그 만큼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이웃 국가 간에 전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시점에 맞춰 삶의 지혜를 갖고 이웃 국가 간에 교우를 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역사를 보더라도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100% 인정하며 사는 국가는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수주의의 부상이다.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공존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현대 국가의 근본적 이슈다.

― 한국이 가진 강점이 있을 것이다.

▶ 나는 일본 회사에서 14년 근무했고 이 가운데 8년은 도쿄에서 거주했다. 일본의 장점이라고 하면 뭔가를 만들어내는 '모노 츠쿠르'의 정신이다. 일본에서는 3가지 한자인 '지을 작(作)', '지을 조(造)', '비로소 창(創)'을 모두 '츠쿠루(つくる)'라고 발음한다. 일본인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내부에서 만들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재 분야가 강하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근대화 역사가 짧다. 60~70년뿐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따지면 150년은 된다. 반면 한국은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여 앞서간 사람을 능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런 점 때문에 국제 공조 측면에서 양국의 강점이 다르다는 점을 따져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 일본은 아직도 폐쇄적이고 수직적된 조직 문화가 강하다. 각 분야별로 나뉘어진 다테와리(たてわり) 조직 문화가 강하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자는 개발만 하고 영업 담당자는 영업만한다. CEO들도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 한 가지만 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CEO가 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관점과 시각의 다양화가 한국 경영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 한일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하는데, 이를 산업적문제로 해결하려고 접근하면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제재한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서 얻는 걸 꺼린다. 그런만큼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일본은 산업적인 면에서 한국에 시장을 빼앗긴 부분이 대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로 본다. 일본 사람들의 정서를 읽어보면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인 가미카제 정신과 유사하다.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3가지를 규제하면 이 소재를 만드는 일본회사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라는 항모가 침몰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의 성공비결은 무모할 정도의 막대한 투자와 글로벌 소재·장비 업체를 적절히 활용한 덕분이다.

―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일본산 소재나 부품을 국산화하고자 총력을 다하고 있다.

▶ 물론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일본산 소재와 부품을 국산화하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다. 다만 한국의 소재-부품의 납품 관행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부품사간 관계를 갑과 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는 반도체에서는 장비와 소재 업체가 갑이다. 장비와 소재 기업을 잘 선정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생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소재 회사와 부품 회사들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회사들의 경쟁력도 금방 사라질 것이다. 삼성이 일류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일류 장비 업체 및 부품 소재 업체와 같이 일한다는 뜻이다. 삼성의 경쟁력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장악하고 있는데서 나온다. 삼성이 부품까지 일원화한다면 몸이 무거워져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 그러면 국산화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반도체 소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반도체 자체를 만드는 소재인 웨이퍼등과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와 많은 관련이 있는 소재인 감광액등인데 이 두가지는 성격이 다르다. 반도체가 발전하려면 소재와 장비가 함께 발전해야한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장비의 일종인 감광기등은 여전히 캐논과 니콘 등 일본 브랜드가 강세이다. 단순히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늘날 쓰고 있는 리소그래피 (Lithography) 방식에서는 개발 단계에서 감광기 업체와 감광 소재 기업들이 함께 협력한다. 실제로 국산화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넘어야한다. 그래서 일본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대응책으로 생각하는 국산화 개념은 패스트 팔로워 시절에 할 때와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이미 퍼스트 무버에 속해있다.

― 한국 경제의 큰 문제점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를 대체할 뚜렷한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다는데 있다. 각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 한국은 그동안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큰 규모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정부의 계획 경제와 재벌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와 정부 정책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산업군이 현재 거의 없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한다. 예를 들어 후지필름은 콜라겐 생산과 감광 기술에서 강하다고 판단해 아날로그 필름 산업을 넘어 화장품과 건강식품으로 업종 전환에 성공했다. 한국은 스스로 핵심 경쟁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그래야 추후에 현재의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다른 분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미래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적자원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학을 미래 대비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시대가 도래했는데 과연 한국의 대학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번 한일갈등을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한국이 부품 자립도를 높이는 이른바 가마우치 경제를 벗어나자는 주장이 있다.

▶ 가마우치 경제구조에서 펠리컨 경제구조로 전환하자고 하는 것은 매우 모호한 표현이다. 한국 경제는 일본에 종속된 가마우치 경제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익을 보면 일본의 부품 소재 전체와 일본 완제품 제조사들을 합친 것 보다 많다. 반도체는 양봉업자 비즈니스 모델이다. 벌이 만들어 놓은 귀한 꿀을 취하고 이보다 싼 설탕을 벌에게 주는 양봉업자가 되면 좋다. 일본의 부품업체나 장비업체를 잘 이용해 우리가 더 많은 이익을 내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이같은 글로벌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한국이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 퍼스트 무버로서 움직일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패스트 팔로워서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반도체 조선 등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패스트 무버를 할 수는 없다. 일본이 그런 과정을 거쳤다. 패스트 팔로워 역할을 유지하지 못한 채 퍼스트 무버를 추구하다 한국에 따라 잡히지 않았나? 예를 들어 한국이 원전에 강점이 있지만 위험성도 있다면, 그 위험성을 줄이려 하는데 더 노력을 해야지 이미 확보된 원전 경쟁력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 히든 챔피언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히든 챔피언이라는 것은 부품 소재의 중소 중견기업이 주역이여야 한다. 아직 국내 중소 중견 기업은 어디에 납품할지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교세라나 TDK는 그렇지 않다. 먼저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제안을 한다. 부품사가 끌고 갈 때가 많다. 종속적으로 대기업에 납품해서는 안된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도전정신이 있어야한다. 가치관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일본은 우동 명장 스시 명장이 있지만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지 않나.

― 끝으로 한·일 갈등을 어떻게 넘어야 할가

▶아베 총리는 A급 전범 용의자였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아서 한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일 갈등의 원인이 역사 문제나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라면 여기에 집중해야한다. 일본이 수출 규제로 대응한다고 해서 맞대응을 해서는 안된다. 마치 상대가 폐렴 독감균으로 공격하는데, 우리는 감기약을 만들자고 하는 꼴이 된다. 아울러 한국이 일본에 맞대응 하는 것이 국제적 여론 형성용인지, 대일 협상용인지, 아니면 이번기회에 우리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것 인지를 명확히 했으면 한다. 싸움은 우리의 강점을 갖고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상대의 강점을 공격하면 필패한다. 한국은 정치적, 외교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전쟁은 산업 전쟁이 아니다. 외교와 정치 전쟁이다.

■ 성공한 CEO 조건? 조직력강화·실적향상·복지증진

매일경제

―직업이 CEO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오랜 기간 CEO로 일한 비결이 궁금하다.

▷성공한 CEO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조직력 강화, 실적 향상, 임직원 복지 증진이다. 우선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 조직력을 강화하면 실적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 실적을 향상시켜야 임직원 복지를 강화할 수 있다. CEO라면 이 세 부문을 균형 발전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력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복지 향상과는 다르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사기꾼이 차린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의 발전이 임직원의 발전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주인 의식을 자발적으로 갖게 하기보다는 '주인을 의식하면서 일하게 만드는 기업문화를 가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네오랩컨버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연결하는 '스마트펜'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단순히 펜을 팔지 않는다. 핵심은 데이터다. 비정형화된 데이터를 모으는 수단이 사실 많지는 않다. 우리는 손으로 만든 글과 그림을 통해 비정형화된 데이터를 모은다. 정보화 시대에 이를 쉽게 관리하려면 인풋 디바이스를 시스템에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네오랩컨버전스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분리돼 있는 것을 부수고자 한다.

―한국 CEO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경영에는 페스트(PEST) 분석이란 말이 있다. 경영자들은 자기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치(Political), 경제(Economical), 사회(Social), 기술(Technological)을 잘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희토류는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이는 최소한 희토류를 생산하는 국가와 선린적 유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을 국산화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접근법이다. 이럴 때야말로 경영하는 사람들이 페스트 분석이라는 개념을 갖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후배 스타트업 CEO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스타트업을 하는 CEO들은 항상 자기 가치를 자기 관점에서 본다. 자기가 만든 가치를 고객이 객관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내가 창조하는 가치를 고객이 인정하는 가치로 변환할 수 없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을 하는 CEO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자기 만족에 그친다는 것이다.

▶▶ 안경수 회장은…

△1952년생 △경기고 △서울대 화학공학 학사 △스탠퍼드대 화학공학 석사 △스탠퍼드대 재료공학 석·박사 △대우전자 컴퓨터사업본부장 이사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상무 △삼성전자 정보사업본부장 △삼호물산 사장 △효성그룹 종합조정실 부사장 △한국 후지쯔 사장 △대만 후지쯔 회장 △일본 후지쯔 경영집행역 △소니코리아 회장 △일본 소니 집행역원 △노루페인트 회장 △2018년~현재 네오랩컨버전스 회장

[정리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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