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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생확대경]`촛불정부`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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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면서 먼저 입장할 것을 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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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준비된 액션에 쓴 웃음이 나왔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월 임기 중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양복 상의를 벗어 흔들어 보일 때였다. 검찰의 독립성 및 중립성과 관련해 “흔들리는 옷(검찰) 말고 흔드는 손(정치권력)을 보라”는 게 문 전 총장 얘기의 요지였다. 충견(忠犬)의 역할을 마다지 않았던 검찰의 지난 시절 오욕의 역사를 떠올리면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두달 여 지나 문재인정부 2기 검찰 윤석열 호(號)가 출범하고 단행된 고위·중간 간부 인사에서 문 전 총장이 얘기했던 그 `손`의 실체는 명확해졌다. 적폐 수사에 앞장섰던 이른바 `윤석열 사단`은 파격적인 승진과 함께 요직을 차지했고 현 정부와 여권 인사 등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이들은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내용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문 전 총장을 보좌했던 참모들 역시 비슷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윤 총장 취임 이후 검찰 조직을 떠난 이들이 벌써 70명에 육박한다. 통상 승진에서 멀어진 이들뿐만 아니라 한창 일할 중간 간부들까지 줄사퇴가 이어졌다. 내부에선 인사 참사, 검란(檢亂) 수준이란 말까지 나온다. 법무부는 주요 보직의 공백을 메우려 부랴부랴 전보 인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이를 두고 한 법조계 인사는 “참여정부 시절 평검사와의 대화 때 언행이 나빴던 검사들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용서하고 포용하는 통 큰 모습을 보였는데”라고 운을 떼면서 “파격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유례 없는 일이다. `기승전-적폐척결`, (정권 기준의) 확실한 신상필벌 차원의 시각에서만 이해가 되는 인사다”라고 꼬집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는 최우선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검찰 개혁을 내세웠다.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되레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았다. “인사는 메시지다”(권순철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는 말처럼 명확한 신호를 준 상황에서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가능하다 생각한다면 위선이다. 지난달 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당부한 문 대통령의 발언 역시 결과적으로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윤 총장 임기는 현 정부 3~4년 차에 걸쳐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힘이 빠져나가는 시기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윤 총장’으로 남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선의로 검찰의 통제권을 포기했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고 노 전 대통령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문 정부의 검찰 개혁이 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음 대선이 아니어도 정권교체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편을 가르고 내 사람 심기식의 인사권을 놓지 않는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 비린 내 나는 검찰의 활극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인사로 충성을 길들이려는 유혹과 역대 정권의 그릇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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