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장애인들 여행 통해 세상으로… 일상의 자신감 얻죠” [차 한잔 나누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 장애인도 누려야 마땅한 휴가 / 10명 중 8명은 포기할 수밖에 / 노약자·영유아 동반가족 포괄 / 환경장애 개선 ‘무장애 관광’ 추구 / 휠체어 타고 혼자 유럽여행 경험 / “못할 게 없어”… 체험형 관광 고민

여름 휴가철이 한창이다. 산이냐, 바다냐, 해외냐 다양한 선택을 두고 고민하다 계획을 세우고 즐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비장애 성인’의 기준이다. 장애인에게 휴가 맞이 여행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 10명 중 8명이 편의시설 부재, 비용 부담 등으로 여행을 포기한 적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여행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애쓰는 이가 있다. 더 많은 장애인이 불편함을 최소화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내는 홍서윤(32)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가 주인공이다.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과 함께 관광지 조사 및 개발, 장애인도 이용하기 쉬운 관광지 자문, 관광서비스종사자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대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약속장소로 왔다. 홍 대표 자신도 지체장애인이다. 사실 장소를 정하는데도 계단, 엘리베이터 유무 등 논의가 필요했다. 서울 시내에서도 이런데 인프라가 취약한 다른 곳은 장애인들의 이용이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의 불편함에 대해 묻자 홍 대표는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을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기력이 없어 휠체어를 타야 이동이 편한 어르신들, 유모차를 사용해야 하는 부모들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러면서 ‘무장애 관광’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협소한 의미로 쓰이지만 장애인, 노약자, 영유아 동반 가족, 외국인까지 포괄해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관광’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 신체적 장애가 아닌 환경적 장애를 제거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관광”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장애인, 노인 등 모두를 위한 ‘무장애관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국내에서도 조금씩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휠체어 및 유모차 탑승이 가능한 리프트 버스가 운행되고 있고, 무장애 관광지 조성 사업도 진행 중이다. 여행사들은 무장애 관광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 효도관광으로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홍 대표는 “바뀌고 있어 다행”이라면서 “여전히 부족한 점은 있다”고 했다. 가장 큰 어려움으로 숙박 문제를 지적했다. “지방 일정이 있으면 방을 못 구해 쩔쩔매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숨 쉬었다.

장애인편의증진법 시행령에는 30개 이상 객실을 갖춘 숙박업소는 전체 객실수의 1% 이상을 무장애 객실로 만들게 돼 있는데, 실제론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홍 대표는 “지방 소규모 호텔에 전화해 장애인 객실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장애인 객실이 있지만 운영하지 않는다’, ‘공사 중이다’, ‘장기 투숙객이 있다’ 세 가지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설치기준은 있으나 운영 기준은 없기 때문”이라며 “장애인 여행 수준이 높아지고, 욕구도 많아지고 있는데 체류형 관광이 힘들어 여행의 폭이 넓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이처럼 여행에 집중하는 이유는 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홍 대표는 “장애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 다양한 활동을 해보면서 변하게 된다”며 “여행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튜버 활동 등 자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사고로 장애가 생겨 집안에만 있던 분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힘을 얻게 됐다고 소감을 전하셨다”며 “평범한 생활이 붕괴됐다고 괴로워했으나 여행을 하면서 일상을 찾을 수 있구나 느꼈다고 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홍 대표 자신도 경험한 일이다. 10살 때 병으로 걸을 수 없게 됐지만 성인이 돼 운전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3년 그는 혼자 휠체어를 타고 한 달 동안 유럽 7개국 26개 도시를 여행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드론을 활용한 관광지 조사, 무장애 관광 산업 활성화, 서비스 교육 등등 줄줄이 내놓았다. 여행 콘텐츠와 관련해서는 카누, 낚시 등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체험형 관광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일이 많아 휴가 일정은 미정이라는 그. “좋아하는 여행이 ‘일’이 되면서 정작 여행 갈 시간이 없어졌네요”라며 웃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