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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북·중·러 릴레이 도발… 韓 ‘안보 흔들기’ 시작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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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북한이 25일 쏘아올린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지도 사실을 전하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말 그대로 ‘잔인한 7월’이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으로 외교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주변국들의 군사적 도발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23일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 4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동중국해까지 남하한 뒤 돌아갔다. 같은날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는 우리 공군의 경고와 차단기동에도 불구하고 독도 영공을 침범, 공군이 경고사격을 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영공 침범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25일에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해 지난달 30일 북미 판문점 회동으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한반도 남부 겨냥한 북중러…전방위 압박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25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방어하기 쉽지 않을 전술유도탄의 저고도 활공도약형 비행궤도의 특성과 위력에 대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 등장한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북한이 지난 5월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과 외형상 매우 유사하다. ‘저고도 활공도약형 비행궤도’라는 것은 정점 고도에서 지상 표적을 향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요격시도를 피하기 위해 미사일이 급상승과 급강하가 거듭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요격회피기동을 실시하는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KN-23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과도 유사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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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쌍안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지도 사실을 전하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다음달 진행될 19-2 동맹 한미 연합훈련과 우리 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미사일 비행특성과 유사한 풀업(pull-up:하강단계서 상승비행) 기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미사일 2발의 궤적을 한미 군 당국이 정밀 평가한 결과, 2발 모두 비행거리는 약 600㎞로 분석됐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이 일반적인 탄도미사일의 포물선 비행이 아닌 레이더 상실고도(음영구역) 이하에서 풀업 기동을 해 초기에 판단한 비행거리와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600㎞를 날아간다면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유사시 미 증원전력이 들어오는 부산항과 김해, 대구 공항은 물론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주한미군기지와 경상북도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등 주요 한미 군사시설이 위협을 받게 된다.

사드와 더불어 패트리엇(PAC-3), M-SAM 등으로 구성된 미사일방어망이 있지만, 일반적인 탄도미사일과 달리 고도가 낮고 요격회피기동이 가능한 북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요격미사일을 발사해야 한다.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요격미사일과 탐지장비 등을 갖춰야 하는 셈이다.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중국, 러시아 폭격기 동해 KADIZ 진입 이후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카드를 뽑아들면서 우리 군과 정부에 대한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국 ‘내로남불’…“원칙 대응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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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영 뉴스전문 TV채널 RT가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했다며 홈페이지에 올린 지난 23일 러시아 공군의 아시아태평양 해역 연합 공중 초계비행 영상. 러시아 TU-95MS 폭격기 우측에 전투기(붉은 원)가 보인다. RT는 이 전투기 기종이나 소속 국가를 밝히지 않았다. 2개의 수직 꼬리날개 등을 볼 때 한국 공군의 F-15K로 보인다. 연합뉴스


북한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중국, 러시아 군용기 KADIZ 진입 및 영공 침범은 서로 다른 성격의 사안이지만, 의미는 같다. 자국의 군사행동은 ‘일상적이고 정당한 주권행사’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우리나라의 안보 관련 이슈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시켜 안보역량을 약화하려는 의도다.

북한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선언 채택 이후 우리 군의 움직임을 비난해왔다.

대남선전매체 메아리는 지난 5월 7일 19-2 동맹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남조선 군부는 무분별한 군사적 대결소동으로 북남관계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며 “북남관계의 파국을 바라지 않는다면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말에 실시됐던 민관군 단독 훈련인 을지태극연습에 대해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9일 “애써 변명해도 이번 군사연습의 도발적 정체와 대결적 성격을 감출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지난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담화에서 F-35A 도입에 대해 “조선반도 유사시 북침의 대문을 열기 위한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우리 군의 움직임을 비난했던 북한은 자신들의 군사행동을 ‘일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부여했다. 대남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5월 4일 동해상으로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방사포 등을 발사한 것에 대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생존권을 해치려 든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반격을 가할 견결한 의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고 자화자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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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앞)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러시아 영공침범 관련 국장급 실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 로비에 마련된 이순신 장군 흉상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 정찰기들은 ‘국제공역에서의 비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매년 수십여차례에 걸쳐 KADIZ에 진입,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항의에도 KADIZ 진입은 근절되지 않아 KADIZ가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러시아의 영공 침범이 발생했다. 영공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KADIZ가 일시적이나마 무력화된 것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군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한국군 단독 훈련도 멈춰야 하며, 무기 도입과 개발도 중단해야 한다. KADIZ는 영공이 아니므로 중국, 러시아 군용기의 비행을 한국 공군이 감시 또는 저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조치다. 사실상의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일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안보 흔들기’가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주권 침해에 대해 단호히 대응한다’ ‘한미 동맹은 확고하다’ ‘필요하다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해 대응한다’는 등의 원칙을 천명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한미 동맹 등) 안보 문제에 대한 원칙이 확고하면 주변국들도 그에 맞춰 대응한다”며 “그런데 우리가 틈을 보이고 있으니 향후에도 이같은 일이 빈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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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5일 쏘아올린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지도 사실을 전하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실제로 정부의 대응을 보면 안보 문제에 대한 원칙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지난 5월 북한이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탄도미사일이다”라고 지적했으나, 정부와 군은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다 지난 2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에야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명시했다. 다음달 실시될 19-2 동맹 훈련도 일정과 명칭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군 내부에서는 “실무선에서는 일정이 잠정적으로 잡혔는데 ‘정무적 판단’ 때문에 공개가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F-35A의 국내 반입 일정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전력화 행사 시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는 남북 관계를 명분으로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군 단독 훈련, 전력증강계획에 이르기까지 로키(Low-Key) 모드를 유지해왔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결과는 무엇일까. 북한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을 앞세워 대남 우위를 노리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을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체제의 ‘약한 고리’로 보고 KADIZ 무력화에 나선 형국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압박을 받아들이는 대신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얻을 것인지, 단호한 안보 원칙을 천명할 것인지,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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