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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일본 소재 수출 제한 장기화 조짐… 업계 "앞으로 100일이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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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재의 수출 제한에 나선 지 17일째를 맞았다. ‘ 현재 시점’에서만 보면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없다. 그동안 간단한 절차만 거쳐 수출되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는 이번 규제로 평균 90일 정도 걸리는 수출 심사가 진행중이다. 2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지난 4일 수출 규제 이후 (해당 소재의 한국 수출이) 승인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3대 품목 수출 규제가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선 ‘향후 100일이 고비’라는 말이 나온다.



수출 제한 선언 후 보름…기업들 초비상 경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관련 기업들은 이미 ‘비상 체제’에 돌입해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3개 핵심 소재의 자체 재고 물량을 점검하는 한편, 한국 기업이 가진 해외 법인, 일본 기업이 가진 해외 공장 등을 통해 추가 물량을 조달할 수 있는지 파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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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소재부품 원천기술 개발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마친후 차세대 반도체 연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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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와 최고경영자(CEO)도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7일,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사장이 지난 16일 일본 출장길에 오른데 이어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21일 일본으로 출국해 현지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 자격으로 18일 도쿄를 찾았지만 일본의 규제가 자동차 소재·부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현지 공급망 점검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 레지스트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90%가 넘는다. 불화수소 의존도가 그나마 44% 정도지만, 반도체 식각과 세정 등에 두루두루 쓰여 ‘물처럼 쓰인다’고 할 정도로 많은 양이 필요하다. 특히 일본의 불화수소는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에 적합한 세계 최고 품질을 지녀 당장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가진 소재 재고가 2주일치 밖에 없어 공장이 머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확인 결과 향후 3~4개월간은 공장 가동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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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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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공급선, 국산화 나섰지만 품질 확보 관건

시간이 흐르면서 양국 간 신경전도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미 “한·일 모두 유엔의 조사를 받아 보자”며 일본이 수출규제 명분으로 내건 '전략물자 북한 밀반출' 주장에 정면 대응한 상태다. 이에 NHK방송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군사 전용 우려가 없으면 신속히 수출허가를 내줄 방침이라고 18일 보도했다.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한국 정부는 “신속한 허가 방침에 대한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뚜렷한 국면 전환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삼성전자는 최근 협력사들에 공문을 보내 일본에서 수입돼 삼성전자에 공급되는 모든 자재에 대해 90일 이상의 재고를 비축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고 확보 시점을 ‘이달 말까지, 늦어도 8월15일 전까지’로 못 박으며 필요한 비용과 향후 해당 물량 재고는 모두 삼성이 책임지겠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스마트폰·TV 같은 다른 부품·소재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한 결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실제로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일일이 개별적으로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소재 품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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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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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과 일본 언론은 중국 빈화(濱化)그룹이 한국의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불화수소 주문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이 아닌 제3의 불화수소의 품질을 테스트 중이라고 보도했다.



기업들 "사태 장기화 대비,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

그러나 제3의 대체재나 국산품의 품질이 기존 일본산을 대체할 만한 수준인지, 품질이 비슷하더라도 이를 실제 공정에 적용해 같은 품질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이견이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소재 기업들은 100년 이상 기술과 노하우를 쌓은 곳이 많다. 당장 그 수준을 따라잡을 공급처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일 간에 이른 시일 안에 타협이 이뤄져 서로 경쟁력 있는 부분을 수출·수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유리하다"며 "그러나 국제적·외교적 역학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이라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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