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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고무줄 공시가` 오류 막으려면 감정원 독점 깨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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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갤러리아포레 공시가격 통오류는 한국감정원이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업무를 독식하다 보니 나온 결과입니다."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60·사진)은 최근 충격적인 '아파트 단지 전체 공시가격 오류' 사태는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1339만가구나 되는 전국 아파트 공시가격 산정을 감정원이 전담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 16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감정평가 자격증을 딴 전문인력이 200명 남짓한 감정원은 수천만 가구 공시가격을 제대로 산정하기 어렵다"면서 "민간의 힘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감정원엔 200명밖에 없지만, 민간 영역에선 4300명이 이미 활동 중이고 수습기간을 마치지 않은 인원까지 더하면 4800명이나 된다"고 힘줘 말했다.

김 회장은 아파트로 대변되는 공동주택 공시가 산정에 '집단지성'인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토지·단독주택과 달리 표준주택이 없어 감정원만 아는 내부 기준으로 '깜깜이 공시가'가 매겨지고 있다"며 "공동주택에도 표준공동주택을 도입해야 공시가가 공정하게 산정돼 재산세 등 조세 제도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재산세·종부세 등 각종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는 현재 토지·단독주택·아파트 등 주택 유형별로 다른 방식으로 책정된다. 토지·단독주택은 일종의 샘플 개념인 표준지·표준주택 가격을 먼저 정한 뒤 이를 기준으로 입지를 비교해 주변 개별지·개별주택 가격을 정한다. 반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별도 표준주택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감정원이 단독으로 전수조사해 공시가를 책정하고 있다. 물론 공정성을 위해 공기업인 감정원이 나서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최근 갤러리아포레 등에서 공시가격 오류 문제가 불거지면서 '감정원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회장은 "전국 아파트가 1339만가구 정도인데 58만개 샘플(표준주택)만 만들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며 "민간 전문가가 먼저 표준공동주택 가격을 산출한 뒤 층수와 조망권 등을 비교해 개별 가구에 적용하면 갤러리아포레와 같은 어이없는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가격을 올리다 보니 잡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전국 모든 종류 부동산에 일종의 공정시장가 개념인 '표준부동산가격'을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실화율을 몇 %까지 올릴 것인지 국회가 법으로 정해 놓으면 국민도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92.3%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재신임(임기 2년)에 성공한 김 회장은 30년간 감정평가 업계에 몸담은 산증인이다. 감정원에서 노조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최근 공시가격 산정 등 여러 가지 이슈를 놓고 감정원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김 회장은 "감정원이 할 일은 공시가격 산정이 아니고도 너무나 많다. 굳이 법에서 명시하지 않은 감정평가 업무까지 할 이유가 없다"면서 "지금과 같은 '유사 감정행위'를 하기보다는 민간 감정평가사들을 직접 채용해 '공시청'이나 '평가청'과 같은 전문 기관을 따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남은 임기 동안 협회의 공공성과 감정평가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데도 힘쓸 예정이다. 김 회장은 "금융 업계의 금융감독원처럼 '기준심사원'이란 별도 감사조직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정부 역할은 민간이 해야 할 감정업무를 직접 도맡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인혜 기자 /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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