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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노량진 횟집 자리싸움? 이젠 '앱 평점' 대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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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보고 왔어요. 숙성모음회 중(中)자 주세요."

지난 16일 늦은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 2층. 스마트폰을 보며 걷던 20대 남성 두 명이 소매점 '광주무등산' 앞에 멈춰섰다. 노량진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수산물을 사서 집이나 근처 식당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점포를 소매점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시장의 소매점을 소개해주는 앱에 나와 있는 메뉴를 주문하자 점주 김승호씨는 숙성된 회를 손님에게 건냈다. 김씨는 "앱을 통해 찾아오거나 전화로 주문을 거는 손님이 전체의 60%에 달한다"며 "높은 평점을 받다 보니 매출이 1층 입지 좋은 점포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늦은 저녁까지 지켜본 노량진 시장에선 상인들의 호객 소리도, 손님의 흥정 소리도 듣기 어려웠다.

조선비즈

지난 16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2층의 소매점 ‘광주무등산’에서 점주 김승호(왼쪽)씨가 고객에게 숙성모음회를 건네고 있다. 이 고객은 스마트폰 앱에서 미리 주문한 뒤 점포를 찾아왔다. 과거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1층에 소매점이 밀집해 2층엔 손님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앱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며 매출이 1층 입지 좋은 점포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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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수산시장 노량진 시장 소매점들이 변신 중이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과거엔 비슷비슷한 수산물을 파는 상황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거나, 입지가 좋은 점포를 웃돈 주고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노량진의 소매 시장에도 점포별 판매 상품과 가격 등을 소개해주는 앱 기반 서비스가 등장을 하며 상황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앱을 통해 이미 어디서 무엇을 살지 정하고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입지는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량진 시장에는 약 700여개의 소매점이 있다.

◇입지로 결판나던 노량진 시장… 위치 나빠도 평점 높으면 매출 상승

그동안 이들의 매출은 '위치'로 좌우됐다. 수협중앙회는 2003년부터 3년에 한 번 추첨을 통해 자리를 재배정해왔다. 시장 관계자는 "과거 구시장 시절엔 입지에 따라 매출이 최대 10배까지도 차이가 났다"고 했다. '자리 갈등'은 2016년 현재의 신시장으로 이전을 할 때도 불거졌다. 약 300여 소매 점포가 신시장으로 이전을 거부했는데, 수협 측은 "구시장의 목 좋은 자리에 있던 상인들이 이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 이유도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10여개는 구시장에 남아 있다.

그러나 수산시장에도 앱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가 등장을 하며 상황은 바뀌었다. 스타트업 '인어교주해적단'은 노량진 시장을 비롯해 전국 주요 수산시장의 소매점을 소개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2015년 내놓았다. 서비스에 가입한 점주들은 앱에 자신의 판매 상품, 가격 등을 게시하고 대신 월 회비를 낸다. 품질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를 한다. 예컨대 살수율 80%(속이 80% 찼다는 의미)인 러시아산 대게는 1㎏당 4만5000원에 팔지만, 70% 미만 상품은 3만5000원이다.

◇"노량진은 한국 소매업의 축소판… 변화 속도 가속화될 것"

좋은 평점과 후기를 받는 점포는 매출이 급등했다. 노량진 시장 소매점은 각각 개인사업자라 구체적인 매출 변동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수협 관계자는 "2층의 점포 중 앱 서비스와 제휴를 한 후 매출이 30% 정도 늘어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제 인어교주해적단 관계자는 "노량진 시장 제휴 점포의 80% 이상이 입지가 좋지 않은 점포"라고 했다. 최근에는 '수산의 민족'이란 유사 업체도 생겼다. 현재 노량진수산시장의 소매점 중 이러한 스타트업들과 제휴를 맺은 점포는 100여곳이다. 지난달 서비스 이용객 수도 70만명에 달한다.

상인의 시각도 급변하고 있다. 최근 제휴를 맺은 상인 A씨는 "중학생 딸이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앱을 통해 주문하는 것을 보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입지를 두고) 신시장·구시장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싸움이 다 부질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했다. 비손수산 장혜숙씨는 "나는 제휴를 맺지 않았지만, 호객해서 손님 유치하던 시대가 끝난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반면 "여름철 비수기에도 적지 않은 회비를 내야 하는 앱 서비스가 꼭 필요하진 않다"거나 "노량진 시장 자체가 경쟁력인데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었다.

안승호(전 한국유통학회장) 숭실대 교수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한국 소매점 시장의 축소판"이라며 "상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상인을 선택하는 시대가 됐고,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김충령 기자(chung@chosun.com);홍연우 인턴기자(한국외대 영어학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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