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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자택구금' 이명박, 故정두언 빈소 '조문 메시지·조화'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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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25일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 오른쪽)이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당직자들과 오찬을 하기 앞서 고(故)정두언 전 의원(〃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이재오 전 의원을 통해 고(故) 정두언 전 의원의 빈소에 조문 메시지와 조화를 전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정 전 의원 빈소를 찾아 취재진에게 “이 전 대통령이 오늘 조문을 오려고 아침에 생각했으나, 보석 조건이 병원을 가는 것 이외에 출입과 통신이 제한돼 있다”라며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를 통해 (저에게) 대신 말씀을 전했다”며 “영어(囹圄)의 몸이 되지 않았다면 만나려 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전 의원은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원을 만나겠다는 이야기는 감옥에 가기 전에도 수시로 했다”라며 “저를 비롯해 정 전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와 가까웠던 점, 우리와 함께 일했던 점, 서로 힘을 모아서 대선을 치렀던 그런 점, 그런 점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은 생전 2007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 대선캠프를 진두지휘하며 그의 당선을 도와 ‘MB정부 개국공신’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19대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이른바 ‘55 서명 파동’을 통해 이 전 대통령 집권 후 이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의혹을 분석하며 ‘MB 저격수’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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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전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강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안타깝다”라며 “이날 오전 이 전 대통령과 통화해 빈소에 가는 이재오 전 의원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강 전 비서관은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 때문에 외출이 안 돼 직접 문상을 가지 못해 유감’이라는 말도 유족 측에 함께 전달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문상가려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재판부가 재판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며 “문상 여부에 대한 의중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묻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지난 3월6일 이 전 대통령을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주거지를 제한하고 변호인과 직계 혈족 외에는 접견과 통신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항소심에서 보석 석방했다.

이에 100억원이 넘는 뒷돈을 받아 지난해 3월22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은 구속된지 349일만에 풀려나 자택에 체류하며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측근인 이 전 의원 등도 이 전 대통령과 직접 통화가 아닌 변호인인 강 전 비서관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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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의 빈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화(빨간색 동그라미)가 놓여 있다. 김경호 기자


본지 기자가 직접 취재한 정 전 의원 빈소에는 정 의원을 배웅하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정계 거물급 인사들의 조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본지는 정 전 의원의 빈소에서 이 전 대통령이 보내온 조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조화는 이날 오전에는 다른 이들 조화와는 달리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오후 늦게 영정 옆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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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정 전 의원 빈소. 연합뉴스


앞서 정 전 의원은 16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인근 한 야산에서 숨진 체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자택에 유서를 남긴 점 등을 들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1957년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사회에 입문해 문화체육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ㆍ비서실 등을 거쳐 2000년 2월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끝으로 20년간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정 전 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2000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대변인에 이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이 전 대통령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대표적 ‘친이계’인물로 분류됐다. 2004년 17대 총선부터 총선까지 서울 서대문을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의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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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말 이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경선캠프 기획본부장, 전력기획총괄기획팀를 맡아 진두지휘하며 당내 기반이 미미했던 그를 당선을 이끈 핵심 주역으로 활약했다. ‘MB정부 개국공신’으로 불린 정 전 의원은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과 조각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며 ‘왕의 남자’로 거듭났다. 그러나 2008년 6월 이상득(SD) 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겨냥해 인사 전횡 등을 폭로했다.

또 그들의 18대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며 일명 ‘55인 파동’의 선봉에 서며 여권을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일각에선 그가 ‘MB의 남자’에서 ‘MB 저격수’로 돌아선 것을 이때로 해석한다. 승승장구하던 정 전 의원은 역풍을 맞아 2012년 임석 전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 됐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국회로 돌아온 그는 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상임위원장’인 국방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중진 의원으로서 행보를 이어갔다. 20대 총선이 있었던 2016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이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된 후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탈당 후 정 전 의원은 이후 각종 종편채널의 패널과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촌철살인의 보수 논객으로 활약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들어 불거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다스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에 일식집을 열어 자영업자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한편 정 전 의원의 사인을 조사했던 경찰은 “타살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며 “유족의 뜻을 존중해 부검은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이 남긴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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