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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충무로에서] 입구만 있고 출구없는 민간 분양가 상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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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가격 규제(민간 분양가 상한제)가 장기화하면 주택 공급 부족으로 오히려 집값 상승 부작용이 일어난다."

최근 몇 주 사이 신문지상이나 야당 쪽에서 숱하게 나온 주장 같다. 전혀 아니다. 2009년 2월 12일 나왔던 국토해양부 보도자료다. 국토해양부 후신인 국토교통부와 김현미 장관은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택지 아파트에 대해서까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했고 "주택 공급이 위축된다는 논리는 전혀 근거 없고 공감할 수 없다"고 줄기차게 말하고 있다.

2009년 보도자료를 뜯어보면 같은 부처가 맞나 눈을 비비게 된다.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2~3년 뒤에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주택가격 앙등 및 서민 주거 안정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된다." 발표자료 결론은 간단했다. 훗날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케케묵은 발표자료를 다시 꺼낸 건 말을 바꾼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망신'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눈여겨본 건 민간 상한제 폐지 발표 날짜와 실제 상한제 폐지 때까지 걸린 기간이다. 2014년 12월까지 무려 5년도 넘게 걸렸다. 발표만 할 뿐 아무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시장 곳곳에서 붕괴 신호가 오고 '하우스푸어'가 수도권에서 속출하면서 곡소리가 나오는데도 "누가 집값 뚜껑을 함부로 열려 하느냐. 집값 올린 주범이 될 테냐"고 한마디 들으면 물러서기 일쑤였다. 경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은 무색했다.

국회에서는 여당 의원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정부도 발표만 해놓고 '할 일 다했다'는 식이었다. 국토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부활' 근거를 다시 제정하면서 국회를 거쳐야 하는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바꾼 것도 이때 세게 데었기 때문이다. 집값 앙등을 누가 바라겠나. 여론이 김 장관과 국토부에 묻는 것은 "최선이 맞느냐"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집값 규제 원칙은 '상위 1%를 겨냥한 핀셋 규제'였다. 아이러니하게 상한제로 인한 분양가 인하 '로또' 수혜는 당첨된 1%만 누린다. 반면, 국토부의 10여 년 전 보도자료처럼 2~3년 후 집값 폭등이 일어나면 피해는 불특정 다수인 국민 모두의 몫이다.

김 장관과 국토부는 기어이 실행에 옮길 것이다. 부디 한 가지 '원칙'만이라도 세워놓길 바란다. "시행을 위해 기준을 정비한다"고 한 만큼 지정 해제 때 기준도 확실히 해두라는 것이다. 당장 청약조정대상지역 규제만 해도 붕괴 직전 지방 부동산 시장에서 아우성인데 해제 기준은 모호해 누구도 못 나서고 있다. 입구만 넓고 출구는 '바늘구멍'인 규제 종착점은 정책 탄력성만 떨어뜨려 국민 피해를 키우는 '대못'이다.

[이지용 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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