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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버려진 물건들 모아 예술로 승화… 환경도 지키죠”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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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영 업사이클링 아트 작가 / 국내 최초 ‘업사이클링 아트’ 활동 / ‘지구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시작 / 기획 인정받아 전시·강연 러브콜 / “새로운 생명력 부여 반드시 염두 / 쓰임새 없으면 또 쓰레기 될 수도 / 업사이클링 마을도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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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쓴 페트병을 녹여서 새로 페트병을 만드는 건 재활용이죠. 하지만 페트병을 잘라서 흙을 담고, 꽃을 심어 창문틀에 놓으면 화분이 됩니다. 기존의 페트병과 모양은 다르지만 새로운 기능을 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이것이 바로 업사이클링입니다.”

지난 5일 전남 순천 창작예술촌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만난 유도영(54) 업사이클링 아트 작가는 “업사이클링은 전혀 어렵지 않을뿐더러 이미 우리 사회에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유 작가는 우리 사회의 ‘버려진 것들’을 소재로 부엉이와 오징어, 새 등 다양한 생명체를 형상화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자, 환경보호 활동가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업사이클링 아트’라는 생소한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한 유 작가는 ‘2015 팔레드 서울 신진작가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뒤 매년 왕성한 활동으로 지금까지 500여점이 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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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영 업사이클링 아트 작가가 지난 5일 전남 순천 창작예술촌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버려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버려진 다리미부터 컴퓨터 기판, 제주도 앞바다에서 주운 폐목재 등이 한껏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유 작가는 “직접 재활용센터와 바닷가 등에서 모아온 소재들”이라며 “작품에 사용되지 않아 다시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엄선해서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버려진 것들을 이용한다고만 해서 모두 업사이클링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 작가는 업사이클링할 때 ‘새로운 생명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업사이클링을 하고 난 뒤에 그것이 실제 쓰임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다시 쓰레기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업사이클링을 통해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업사이클링 아트에 뛰어들기까지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 작가는 시사주간지에 일러스트를 제공하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하나뿐인 지구를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버려진 것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향한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유 작가는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됐을 당시에도 ‘쓰레기를 갖고 작품을 만든다’는 동료작가들의 뒷말이 나온 적도 있다”며 “그럴수록 더욱 작업에 열중했다”고 말했다.

친숙한 소재와 정감 넘치는 작품, 그리고 환경을 고려하는 그만의 기획을 인정받아 올해 그는 서울시 전시작가 공모에 당선돼 서울시청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했다. 경기 화성시와 강원 춘천시, 산림청 등 다양한 기관에서도 유 작가에게 작품 전시와 강연 등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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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작가는 작품 활동뿐 아니라,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아이들과 공유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도 열심이다. 2015년부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폐목재와 쓰다 버린 전선 등을 깨끗하게 준비해 아이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유 작가는 “교육에 앞서 반드시 소재에 대해 설명한다”며 “이를 통해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버려진 것들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을 알려준다”고 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나 형제를 데려와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하는 ‘고정 팬덤’도 생겼다. 유 작가는 “교육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업사이클링에 조금 더 친숙해지고, 향후 업사이클링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을 표했다.

유 작가는 업사이클링의 활성화를 위해 시나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업사이클링센터 등을 건립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운영할 만한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업사이클링 작품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알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획 전문가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순천에 새로 자리를 잡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유 작가는 최근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 작가는 “업사이클링은 크게 보면 도시재생과도 연결된다”며 “도시재생이 필요한 지역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업사이클링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낡은 건물, 오래된 골목에 시민들과 함께 생명을 불어넣고,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잇는 것이 목표다.

유 작가가 꿈꾸는 마을에서는 환경보호와 생명의 가치, 그리고 주민 간의 소통과 공감이 최우선이다. 다만 일회용품과 비닐봉지 반입은 절대 금지란다.

순천=글·사진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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