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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암흑세계' 겪은 뉴욕…'대정전' 지속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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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전으로 어둠이 내린 미국 뉴욕의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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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이 대규모 정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 잠들지 않을 것 같았던 타임스퀘어 전광판이 꺼졌고, 가수 제니퍼 로페즈의 공연이 중단됐다. 13일(현지시간) 오후 6시 47분부터 14일 자정까지 이어진 이번 정전은 뉴요커 7만300가구를 긴장시켰다.

특히 이번 정전은 42년 전 뉴욕 대정전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다행히 정전 사태는 4~5시간 만에 복구되며 과거처럼 우려할 만한 혼란은 없었지만 국가적 대규모 정전이 장기화할 때 사회 안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다시 한번 자극한 것이다.



대규모 정전 3개월 이상 이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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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대규모 정전으로 불이 꺼진 42번가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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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사이버테러 연구 분야에서 이뤄진 바 있다. 사이버테러가 위협으로 떠올랐던 2006년 초 미국 국토안보부 자문기관이자 비영리 사이버보안 전문기관인 UCC(Cyber Consequences Unit)의 스콧 버그 박사가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는 당시 연구에서 "블랙아웃이 대형 허리케인 40∼50개가 한꺼번에 강타하는 정도의 충격을 사회에 줄 수 있고 경제적 여파는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버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정전 첫날인 1단계에서는 상점이 문을 닫고 현금자동인출기·주유소 등의 이용이 어려워진다. 3일이 지나면 위기 2단계로 올라선다. 2단계에서는 각종 기기의 사용이 힘들어지며 생필품 사재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10일 뒤인 3단계에는 약품 부족과 냉난방 불가능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최악의 상황으로 3개월 이상 대규모 정전이 이어지는 4단계에 이르면 폭동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버그 박사의 연구 결과다.



4개월째 대정전, 베네수엘라 상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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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대규모 정전이 일어난 베네수엘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자 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이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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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베네수엘라는 대규모 정전이 4개월째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부터 수도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전국 25개 주에서 차례로 정전이 일어났다. 급기야 국토의 96%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사태로 이어졌다. 극심한 정국 혼란 속에 오랫동안 방치된 전력 시스템이 베네수엘라의 정전 원인으로 꼽힌다.

최악의 정전 사태는 각 가정은 물론이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 병원 등 사회 기반시설들이 멈추게 했다. 우선 시내 전철 운행이 멈추며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수도 카라카스 외곽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약 3~4시간씩 걷거나 수차례 버스를 환승하고 있다. 병원에선 비상발전기 가동마저 멈춰서 사망 환자가 발생했다. 관공서는 일찌감치 업무를 멈췄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정전사태 닷새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에서는 간헐적으로 복구와 정전이 반복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 분석기관 에코아날리티카 측은 정전으로 인한 피해금액은 최소 20억 달러(약 2조 359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어디로 가란말이냐” 뉴욕, 2003년 대정전 땐 도로 마비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도 지난 2003년 8월 13일 대규모 정전사태로 불편을 겪었다. 뉴욕과 뉴저지 등 미국 동북부 8개 주와 퀘벡 등 캐나다 일부 지역에 3일 간 전력 공급이 중단돼 5500만명이 피해를 봤다. 뉴욕과 인근 도시들은 전기 없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대중교통 중단, 항공기 운항중단, 상업활동 중지 등 정전 기간에 60억 달러(약 6조8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뉴욕에선 대중교통이 마비수준에 이르자 택시 요금이 올랐다. 택시 기사들은 정상 요금의 16배가 넘는 요금을 요구했고, 휘발유 공급이 줄며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24% 이상 급등했다. 도로위에서는 신호등 작동에 보행자들과 자동차들이 뒤엉키며 싸움이 붙었고, “어디로 가란 말이냐”는 운전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례 등 진화·구조로 소방관들이 5000차례 이상 출동했다. 상점들이 약탈을 막기 위해 가게 문을 닫은 탓에 생필품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미국 자동차회사와 반도체 업체들은 공장 문을 닫았고, 맨해튼의 꺼지지 않던 네온사인이 모두 꺼졌다. 식수 부족 사태도 발생했다. 정전으로 하수 처리가 불가능해 상수원 오염 경고가 나왔고, 수돗물 사용이 중단됐다.



암흑 속 무법천지 뉴욕, 42년 뒤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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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뉴욕에서 대정전이 일어나자 카네기홀 연주자들이 즉석에서 길거리 공연을 열었다. [트위터 @Ponce’sPoint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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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전 발생한 뉴욕 대정전은 초유의 사태로 기록됐다. 1977년 7월 13일 한 변전소에 내리친 벼락 때문에 발생한 대정전은 약 25시간 동안 뉴욕을 공포의 밤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뉴욕은 암흑 속 약탈과 방화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뉴욕 시내 상점 1700여 곳이 약탈당했고, 2000건 이상의 방화가 일어났다.

결국 3000여명이 넘는 이들이 경찰에 체포됐고, 200여명의 경찰이 부상당했다. 총 3억1000만달러(약 3656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상점 주인들은 정전사태가 끝날 때까지 조직을 구성해 총을 들고 상점을 지키기에 이르렀다.

정확히 42년 뒤에 발생한 이번 뉴욕 대정전에서는 범죄 대신 성숙한 시민의식이 돋보였다. 뉴욕 카네기홀 연주자들은 시민들을 위한 즉석 길거리 공연을 펼쳤고, 뮤지컬 ‘웨이트리스’ 등도 거리에서 간이 공연을 진행했다. 당시 상황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며 박수를 받았다. 일부 뉴욕 시민들은 직접 거리로 나서 교통 통제에 동참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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