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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1만원 vs 8000원 맞섰지만, 노사 협상안 냈고 투표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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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여당 안에서도 간섭 많아

공익위원, 주변 압박 신경 안 써

동결안 낼 줄 알았던 경영계가

인상률 2.87%까지 올려주고

노동계가 6.3%로 내려올 줄 몰라

싸워 쟁취하려는 협상자세 곤란

노사 모두 반성하고 상대 존중을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권순원 공익위원 간사 인터뷰

중앙일보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한림대 교수·왼쪽)과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숙명여대 교수)가 12일 2020년 최저임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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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12일 결정됐다. 올해(시급 8350원)보다 2.87% 오른 금액이다. 최저임금위원회 27명의 위원이 새로 꾸려져 첫 전원회의(5월 30일)를 연 지 44일 만에 마무리됐다. 2020년 최저임금은 이의신청 절차 등을 밟아 다음 달 5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날 오후 늦게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과 노사와 공익위원 간의 의견 조정 역할을 맡은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를 만났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 권 간사와의 일문일답. ( )안은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Q :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A : ◆ 박준식 위원장(이하 박)=“어려운 국면이었다. 정권 초기에는 소위 ‘룸’이 있다. 정권이 지향하는 이념을 쫓아 밀어붙여도 되는 여지가 있고, 그 룸에서 보호도 받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핵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경제상황이나 국민의 여론, 최저임금의 부작용, 소상공인의 지불능력, 제도 개선 등 여러 사안이 한꺼번에 터졌다.”

Q : 관심이 큰 만큼 외부 압력은 없었나.

A : ◆ 권순원 위원(이하 권)=“공익위원들은 불편부당하게 하려 원칙에 천착했다. 그러나 국회도, 여당 안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며 간섭이 많았다. 결정이 임박해서는 여러 곳에서 위원들을 불러 세미나하고, 압박 대열에 가세했다. 최저임금위는 독립기구다. 그러면 안 된다. 공익위원은 어떠한 압력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Q : 노사의 최초 요구안이 공개된 뒤 올해도 난항이 예상됐다. (노동계는 시급 1만원(19.8% 인상)을, 사용자는 8000원(-4.2%)을 요구했다.)

A : ◆ 박=“경영계가 여기까지(2.87% 인상) 올려서 제시할 줄 몰랐다. 내심 당황했다. 동결안을 낼 줄 알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노동계가 6.3% 인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노동계로선 뼈를 깎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 권=“(경영계가)처음에 마이너스 인상률을 제시했을 때 놀랐다. 실업급여 등 여러 사회보장 정책과 맞물린 게 최저임금인데, 그걸 깎으면 사회보장의 틀이 크게 흔들린다.”

Q : 공익위원 사이에 마이너스 인상률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A : ◆ 박=“그랬다. 노동계가 1만원을 제시할 때도 고개를 저었지만, 경영계가 마이너스 인상안을 냈을 때 충격이었다. 공익위원도 삭감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임금을 삭감하려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혼란은 어떻게 하려고 사용자 측이 그런 안을 냈는지 모르겠다. 사용자 측에선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만 적용하면 된다’고 했다. 공익위원들이 ‘그러면 다 자르고 새로 뽑지 않겠느냐’고 반박하니 당혹해 하더라. 논리 없이 명분에 집착한 단적인 예다.”

Q :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그런데 인상 근거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A : ◆ 권=“최저임금위원회 운영과정과 기구 취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최저임금 결정의 키는 노사의 책임 있는 역할과 선택이다. 임금 수준 또한 당사자 결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현 제도에서 공익위원은 조력자다. 지난해에는 공익위원이 인상안을 내고, 그걸로 결정됐다. 따라서 공익위원이 설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사가 낸 안으로 투표했고, 결정됐다.”

중앙일보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3차 전원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이 2.87%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됐다. 류기정 사용자 위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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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협상 과정에서 공익위원의 조정역할이 안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A : ◆ 권=“같은 이치다. 만약 끝까지 협상이 진행돼도 진전이 없다면 공익위원이 나서 조정했을 것이다. 공익위원이 임금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Q : 공익위원이 협상 도중에 한 자릿수 인상률을 제시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A : ◆ 박=“우리는 한 번도 적정 인상률을 제시한 적이 없다. ‘협상 가능한 수정안’을 요구했는데, 그걸 공익위원이 한 자릿수 인상률 제시한 것처럼 포장돼 알려졌다.”

Q : 교착상태가 계속되면 공익위원이 나설 수밖에 없었을 텐데.

A : ◆ 박=“물론 플랜 B는 있었다. 나름대로 최저임금의 적정선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고, 공익위원끼리 접점도 있었다. 정 안 되면 노사와 공익위원이 각자 안을 내고 자유 투표를 할까도 생각했다.”

Q : 공익위원이 생각한 것은 어느 정도였나.

A : ◆ 권=“우리가 판단한 결정기준은 이랬다. 소득분배율의 경우 최저임금이 중위임금 대비 60% 수준에 올라 고려하지 않았다. 적정임금인상률, 즉 노동생산성과 유사근로자 임금을 감안한 수치를 기준으로 했다. 여기에 근로장려세제(EITC)와 같은 저임금 근로자의 국가 소득보전분을 일부 고려했다. 이 수준에 부합한 금액을 사용자 위원이 냈다. 공익위원이 공감했다.”

◆ 박=“경제 상황과 사회안전망, 노동생산성이 잘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처음부터 최저임금의 완충 정책은 일자리 안정자금이 아니라 EITC로 갔어야 했다.”

Q : 협상 과정에서 고쳤으면 하는 게 있었나.

A : ◆ 박=“싸워서 쟁취한다는 개념으로 협상에 임하는 데 실망했다. 협상의 기본은 공부다. 그런데 적정임금인상률이나 노동생산성, EITC 등 결정 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는 등 정밀한 논리 대결이 거의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구호와 명분만 난무했다. 그래서 회의 첫날부터 말의 품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는 노사 모두 반성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Q : 최저임금위 차원의 개선점은 없었나.

A : ◆ 박=“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 구조다. 다툼도 매년 계속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조건과 상황이 (임금을) 결정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재생산할 필요는 없다.”

Q : 향후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인가.

A : ◆ 박=“최저임금을 결정했다고 폐장하는 예전 전철을 안 밟을 것이다. 노사와 공익위원이 함께하는 워크숍 등으로 향후 과제를 논의하고, 의견도 수렴할 생각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것도 중요하다. 최저임금 협상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내렸다고 사용자 위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올렸다고 근로자 위원을 위한 것도 아니다.”

◆ 권=“노사와 공익위원이 끝까지 남아줘서 고맙다. 지난해에는 과반인 14명만 남아 투표했다. 사회적 수행성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모두 참여했다. 근로자 위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 상처를 치유할 몫 또한 우리에게 있다.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라는 최저임금의 목적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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