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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스마트 폭탄·전투로봇 시대…아직도 총검술 고민하는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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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1차 세계대전 이후 효용성 떨어져

일본군은 총검술 고집하다 패망

폐지하지만, 대안은 반드시 있어야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연무형 17개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국군 총검술 훈련이다. 총검술은 소총 끝에 대검을 꽂은 뒤 적과 육박전을 벌이는 전투법이다. 2005년 2개 동작이 더 해져 ‘연무형 19개 동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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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조교의 연무형 19개 동작 시범.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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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에서 조교의 연무형 시범에 훈련병은 넋을 잃고 지켜봤다. 절도 있는 동작에 ‘촥~ 촥~’ 소리가 더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팔꿈치로 개머리판을 때릴 때 나는 소리였다. 소리 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조교들은 팔꿈치에 멍이 드는 걸 마다치 않았다. 그만큼 멋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교가 북한군의 ‘창격술’ 시범까지 보이면 그야말로 게임 오버였다.

총검술이 1946년 미 군정 때 국군경비대가 창설하면서 도입한 지 7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출 운명이다. 요즘 훈련소에서의 총검술 교육은 조교가 시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훈련병이 실제 착검을 해보는 경우는 각개전투에서 마지막 일제 돌격 때에 불과하다.

해군은 2007년 일찌감치 총검술을 신병 교육에서 퇴출했다. 공군은 올해 1월 총검술 과목을 폐지했다. 육군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각 부대 의견을 들은 뒤 총검술 훈련을 계속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육군은 이미 2011년 총검술 훈련을 신병 교육에 넣고 빼고를 각 사단장에게 맡겼다. 육군은 총검술을 근접전 훈련으로 대체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근접전 과목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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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신입생이 기초 군사훈련에서 총검술 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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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폭탄으로 정밀하게 타격하고, 무인가와 전투 로봇을 싸움터에서 보고 있는데 총검술이 왜 필요하냐는 게 군 당국의 기본 생각이다. 여기에 군복무기간 단축으로 신병 교육기간을 1주씩 줄이면서 총검술 훈련을 넣을 여유도 없어졌다.



17세기 유럽에서 최첨단 전술로 등장한 총검술

지금이야 총검술이 구시대 유물이지만, 한때 최첨단 전술로 대접받았다. 시간과 장소를 16세기 유럽으로 되돌려 보자. 전쟁사 학자인 크리스터 외르겐젠은 『근대 전쟁의 탄생』에서 16세기를 ‘실험의 시대’라 불렀다.

“장창과 탄화의 시대 초기 국면에서 전술의 발전은 두 무기 체계를 결합하는 최상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주요 문제는 전장에서 공격에 취약한 화승총병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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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1년 브라이텐펠트 전투를 그린 스케치화. 총병이 아퀘부스를 쏘면서 연기가 나고 있다. 총병을 지키는 창병이 총병 한가운데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다. 장창대 속에 깃발들이 보인다. [사진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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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쿼부스(화승총)는 대단히 무겁고 장전 속도가 느렸다. 16세기 네덜란드 교범에는 화승(심지)에 불을 붙여 아쿼부스를 사격하는 동작을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준비부터 발사까지 44개 동작을 거쳐야 했다. 이러니 숙달한 사수라도 이상적 조건에서 한 발을 장전하고 조준을 한 뒤 쏘는 데 20초가 걸렸다. 나중에 부싯돌 점화 방식이 나오면서 장전 속도가 좀 더 빨라졌지만, 재장전하는 동안 총병은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특히 기병 앞에서 총병은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은 신세였다.

그래서 궁리 끝에 창병이 총병을 보호했다. 아예 총병과 창병을 따로 두기보다 총병에게 총검을 줘 총을 창처럼 쓰는 방법으로 발전하면서 총검(bayonet)이 나왔다. 총검은 1606년 중국 책에서 총도(銃刀)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타났다. 유럽에선 1647년 플러그식 총검이 먼저 등장했다. 지금처럼 별도의 이음 고리로 총신에 끼우는 방식은 소켓식 총검이다. 이에 비해 플러그식 총검은 칼집을 총구에 꽂는 방식이다. 착검하면 총을 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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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클랭키 전투에서 칼과 방패로 무장한 스코틀랜군에게 참패한 영국군. 이 전투 이후 플러그식 총검이 대대적으로 보급됐다. [사진 National Trust for Sco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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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켓식 창검으로 무장한 영국군이 1689년 7월 27일 스코틀랜드 재커바이트 반란군과 킬리크랭키 전투에서 맞붙어 참패했다. 반란군은 주로 칼과 방패로 무장했지만, 재장전이 굼뜨고 제때 총검을 장착하지 못한 영국군을 일제 돌격으로 무찔렀다. 이후 플러그식 총검이 대세가 됐다. 백병전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사격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모두들 외면했지만, 총검술에 집착한 일본

총검술은 매우 중요한 전술로 자리 잡았다. 군인은 물론 일반인도 총검으로 펜싱경기처럼 시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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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착검한 뒤 돌격하고 있는 독일군.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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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총검술의 가치가 떨어졌다. 착검한 뒤 적의 진지로 일제 돌격했지만, 결과는 기관총과 철조망, 포병 사격으로 큰 피해 보는 것이었다.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학과 교수(중령)는 “유럽과 미국, 러시아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총검술의 효율성을 낮게 봤지만, 유일한 예외가 일본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러일 전쟁 때인 1904~5년 중국 뤼순(旅順)의 러시아 요새를 공격하면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일본은 앞으로 강대국과의 물량 위주의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신력과 무사도, 군인 정신을 강조하는 교리를 나름 만들었다. 1909년 일본군 보병 교범인 보병조전(步兵操典)을 보자.

“보병은 전투의 중심이며, 승리를 위해선 공격 정신을 고취해야 한다. 이것의 결정체가 총검 돌격이다. 사격만으로 적을 격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최후에는 역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격은 백병전을 위해 적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며, 특히 백병전은 일본 전통의 묘기(妙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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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식 총검을 착검한 소총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일본군. [사진 위키피디아]



이후 일본은 중국과 싸우면서 총검 돌격이 최고라는 생각을 굳혔다. 또 1938년 하산호 전투(장고봉 전투)와 39년 한힌골 전투(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의 탱크에 총검으로 맞섰다. 두 전투 모두 일본이 졌지만, 일본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종남 교수는 “일본은 총검으로 탱크와는 싸울 수 없다고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총검과 백병전의 일본군 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반자이(만세(萬歲)의 일본어 발음) 돌격으로 이어졌다. 일본군은 주요 전투에서 “천왕 폐하 만세”를 외친 뒤 일본도와 총검을 들고 적진으로 달려갔다. 전투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자이 돌격으로 자결하려는 일본군도 많았다. 총검으로 탱크에 달려드는 ‘대전차 총검술’이란 개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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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으로부터 뺏은 99식 경기관총을 든 미 해병대원. 착검을 한 상태다. [사진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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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99식 소총은 물론 100식 기관단총, 96ㆍ99식 경기관총 등 보병이 손으로 들고 다니는 어지간한 일본군 총은 다 착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일본군이 메이지(明治) 30년(189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썼던 30식 총검은 25.4㎝였다. 단검이라고 부르기엔 긴 편이었다.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일본인을 고려해 길이를 키운 것이다. 일본은 30식 총검을 840만 자루나 만들었다.

총검의 일본은 결국 탱크를 앞세운 미국과 소련에 패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총검 중시 전통은 일본군이 침략했거나 일본의 식민지였던 아시아로 퍼졌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전에서도 총검으로 이긴 사례 제법 있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총검 돌격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총검은 통조림 따개로 전락했다. 그러나 총검 돌격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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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루이스 밀레 대위가 18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향해 총검 돌격을 하고 있는 모습. 미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미 육군 보병 박물관 전시물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6ㆍ25전쟁 때 중공군은 야간에 인해전술로 유엔군을 기습하면서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 이에 맞서 프랑스군은 1951년 1월 10일 지평리 전투에서 1개 소대도 안 되는 25명이 총검 돌격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쫓아냈다. 후에 프랑스군 대대장인 몽클라르(본명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ㆍ중장이었으나 대대를 이끌고 6ㆍ25에 참전하기 위해 중령으로 스스로 강등함)는 “총검보다 기관총, 수류탄, 무반동총, 박격포가 승리에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터키군도 51년 1월 25일 151고지 전투에서 총검 돌격으로 중공군을 패주시켰다. 미군도 51년 2월 7일 루이스 밀레 대위가 이끄는 미 육군 27연대 이지(E) 중대가 18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총검 돌격으로 무찔렀다. 미군의 마지막 총검 돌격이다. 밀레 대위는 이후 명예 훈장을 받았다.

영국군도 현대전에서 총검 돌격을 여러 번 써먹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82년 6월 13~14일 섬블다운 산 전투에서 영국군이 총검 돌격을 걸자, 아르헨티나군도 총검 돌격으로 맞섰다. 이라크전 때인 2004년 5월 14일 대니보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시아파 마흐디 민병대에게 포위당하자 총검 돌격으로 돌파했다. 2009년과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영국군은 탈레반과 교전 중 착검한 뒤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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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펍 소총인 FN의 F2000에도 착검을 할 수 있다. [사진 farm4.static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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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전훈 때문인지 최신 소총에도 착검 기능이 빠지지 않는다. 불펍 소총(급탄과 격발이 방아쇠 뒤쪽에서 이뤄지게 해 총열을 짧게 만든 소총)인 SA80과 FN F2000이 대표적이다.



보여주기식 총검술보다 근접 전투술을 가르쳐야

미 육군은 2011년부터 총검 공격 과정(Bayonet Assault Course)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소총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총검이나 나이프로 싸우는 훈련은 계속하고 있다. 반면 미 해병대는 아직도 총검술을 가르치고 있다. 태상호 특수지상작전 연구회 연구원은 “미 육군은 이라크에서 도심 전투를 치르며 총검술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총검술을 개인 전투술(Combatives)로 대신했다”면서 “미 해병대는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총검술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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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의 총검 전투 훈련 모습. [사진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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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미 육군도 최근 총검술을 부활할 조짐을 보인다. 미 육군이 2017년 펴낸 개인 전투술 교육회장(교범으로 출판하기 전 주요 관계자에게 검토용으로 회람하는 발간물)에 총검술 동작이 들어간 것이다. ‘Thrusting Weapon(찌르는 무기)’ 편 보면 Thrust(찔러), Butt Stroke to the Head(개머리판으로 돌려쳐), Smash(때려) 등 15개 동작이 나온다. 연무형 17개 또는 19개 동작과 비슷하다. 다만 동작이 작고, 연속 동작이나 응용 동작이 없다는 게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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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교육회장(Training Circular) 3-25.150(2017년판)에 나온 찔러(Thrust) 총검 동작. [미 육군 출판국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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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 돌격으로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되는지 일본군의 사례가 보여준다. 그러나 총검 돌격이 가끔 승리를 가져오는 사례가 제법 있었다. 그렇다면 총검술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군사 잡지인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총검술이 앞으로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니라, 한국군의 총검술은 보여주기식에만 치중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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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전투술(Combatives) 훈련을 하고 있는 미 육군. 보호장구로 글러브를 꼈다. [사진 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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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총검술을 폐지하기 전부터 모의 총검(Pugil Stick)으로 하는 1대1 전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미 공군 훈련소에서의 모의 총검 전투훈련. [사진 미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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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은 이렇게 대안을 제시했다.

“현대전에서도 군인이라면 3가지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①즉각 사격할 수 있는 능력 ②스스로 응급처치할 수 있는 능력 ③총이 아닌 도구나 맨손으로 자기를 방어하는 능력 등이다. 총검술 자체가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전근대적 총검술이 소용없는 것이다. 총검을 포함한 다양한 도구로 전투하는 방법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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